전 세계 어린이 1억7천800만명 올해 홍역 예방접종 기회 놓쳐
민주콩고, '코로나19 백신실험' 의심하며 예방접종 거부하기도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백신이 아직 없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전 세계가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아프리카와 같은 가난한 나라들은 설상가상 예방접종으로 쉽게 막을 수 있는 홍역과 같은 다른 전염병과 씨름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는 의료진이 다른 전염병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는 데다 서방 국가가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실험을 할 것이라는 루머까지 겹치면서 홍역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보다도 전파력이 강한 홍역은 현재 방글라데시, 브라질, 캄보디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이라크, 카자흐스탄, 네팔, 나이지리아,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전 세계 29개 국가에서 홍역 예방 접종을 중단했는데 이 중 18개 국가에서 홍역이 발생했으며, 13개 국가가 추가로 예방접종 중단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역뿐만 아니라 파키스탄·방글라데시·네팔 등에서는 디프테리아가, 남수단·카메룬·모잠비크·예멘· 방글라데시 등에서는 콜레라가 유행하고 있다.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폴리오 바이러스 돌연변이도 최근 30개가 넘는 국가에서 발병했다.
올해 코로나19 때문에 전 세계에서 홍역 예방 접종 기회를 놓친 어린아이들 규모는 1억7천800만명에 달한다는 게 홍역·풍진예방파트너십(Measles & Rubella Initiative)의 추산이다.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치부조 오콘타 지부장은 수개월 안에 홍역과 같은 전염병이 코로나19보다 더 많은 아이들을 숨지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소아 감염병을 전공하는 이본 말도나도 교수는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이 홍역에 걸린 환자가 2시간 전에 머물렀던 방에 들어간다면 감염될 확률은 100%"라고 설명했다.
홍역으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나라는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이다. 2018년부터 홍역이 유행하기 시작한 민주콩고에서는 올해만 6만명이 홍역에 걸렸고 800명이 홍역으로 사망했다.
민주콩고는 올해 봄부터 전국에서 홍역 예방접종을 실시하려 했으나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계획을 중단했다. 주사를 맞으려면 학교 운동장이나 시장에 수백명의 아이들이 모여야 하는데 이는 코로나19 예방지침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지역에 한해 홍역 예방접종을 하겠다고 계획을 수정했으나 이번에는 백신을 비롯해 의료용품을 실어나를 항공편의 발이 묶이면서 난감한 상황에 부닥쳤다.
백신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구호 물품이 민주콩고에 도착한 다음도 문제는 계속됐다. 도로 상황이 여의치 않아 비행기로 물건을 옮겨야 하는데 국내선 역시 띄울 수 없었다. 결국 유엔 평화유지군의 도움까지 받아야 했다.
민주콩고 보건당국은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느냐, 홍역 확산을 막느냐의 갈림길에서 고심하다가 홍역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 백신을 가득 싣고 초포(Tshopo) 지역을 찾아갔지만, 복병은 다른 데 또 있었다.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놓으려는 주사가 효능이 확인되지 않은 코로나19 백신으로 실험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으로 뭉쳐있었기 때문이다. 설득 끝에 1만6천명에게 홍역 예방접종을 할 수 있었지만 2천명은 끝내 주사 맞기를 거부했다.
앞서 프랑스 의료전문가들은 지난 4월 방송에 출연해 아프리카를 코로나19 백신 실험장으로 삼자는 이야기를 했다가 뭇매를 맞았고, 여기에 민주콩고 바이러스학자가 올여름에 임상시험에 참여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가장 최근 수집한 자료이자 홍역 예방 접종이 지금보다 활발하게 이뤄진 2018년 전 세계 홍역 환자는 1천만명에 육박한 것으로 추정되며 14만2천300여명이 이로 인해 사망했다.
run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