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에 정부·중앙은행 잇달아 요구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세예드 압바스 무사비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15일(현지시간) 미국의 대이란 제재 탓에 한국의 은행에 동결된 이란의 석유 수출대금을 반환해야 한다고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무사비 대변인은 "이란과 한국은 정부, 기업간 관계가 좋았다"라며 "그런데 한국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와 압박에 맹종하면서 우리가 우리의 자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미국)에 복종하기로 한 나라(한국)의 그런 결정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한국은 이란의 자산을 오랫동안 동결할 권리가 없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는 중앙은행과 함께 우리의 돈을 되찾기 위해 모든 법적, 정치적, 외교적 수단을 마련하겠다"라며 "한국은 반세기 동안 이어진 양국의 우호를 훼손하지 않도록 재고하기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도 이날 주간 브리핑에서 "한국은 필수품과 의약품 등 인도적 물품을 이란이 수입하는 데 동결된 석유 수출대금을 써도 된다고 했다"라며 "그러나 한국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이에 협조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 "한국 정부가 조속히 우리 자산을 풀어줘야 한다"라며 "그 돈은 미국이 한국에 이란산 석유 수입을 허가했을 때 우리가 한국에 수출한 대금이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압돌나세르 헴마티 이란중앙은행 총재도 지난 주 이란이 한국의 두 은행에 묶인 석유 수출대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한국 정부에 촉구했다.
이란 국영·민간 언론도 이런 요구에 가세하는 분위기다.
이란 정부가 '반환'을 요구하는 돈은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예치된 이란의 석유 수출대금이다. 액수는 약 70억 달러(약 8조4천억원)로 알려졌다.
한국과 이란은 2010년 미국 정부의 승인 아래 이들 두 은행에 이란중앙은행이 개설한 원화결제계좌로 교역할 수 있었다.
이란에서 원유, 초경질유(가스콘덴세이트)를 수입한 한국 정유·석유화학 회사가 이들 은행에 개설된 계좌에 대금을 원화로 입금하고, 이란에 수출하는 한국기업이 수출대금을 이 계좌에서 찾아가는 상계 방식으로 운용됐다.
이란으로 외화가 유입되지 않도록 하면서 양국이 교역할 수 있는 제재 우회 통로인 셈이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미국 정부가 이란중앙은행을 특별지정제재대상(SDN)에서 국제테러지원조직(SDGT)으로 제재 수준을 올리면서 한국의 두 은행은 이 계좌의 운용을 중단했다.
이란과 거래에 참여했다가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자금을 이용해 지난달 30일 고셰병 치료제 애브서틴 50만 달러어치가 한국에서 이란으로 수출됐다.
이란은 미국의 원유 수출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화보유액이 부족해지자 해외에 동결된 자국 자산을 회수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란 측 고위 인사가 최근 잇달아 한국을 압박하는 것도 이런 절박한 경제난을 반영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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