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남미 출신이 맡아온 IBD에 이례적으로 총재 후보 내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전통적으로 중남미 출신 수장이 이끌던 미주개발은행(IDB)에 미국이 이례적으로 총재 후보를 내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백악관의 중남미 담당 보좌관인 모리시오 클래버커론을 미주개발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했다.
미 재무부는 "클래버커론의 지명은 중요한 지역 기구에서의 미국 리더십과 서반구의 번영·안보를 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1959년 설립된 미주개발은행은 중남미와 카리브해 지역 개발을 위한 최대 은행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그 역할이 더욱 커졌다.
본부는 미국 워싱턴에 있지만 지난 60여 년간 4명의 수장은 모두 중남미에서 나왔다. 칠레, 멕시코, 우루과이 총재에 이어 콜롬비아 출신의 루이스 알베르토 모레노 총재가 2005년부터 이끌고 있다.
중남미 출신이 총재를 맡고 미국이 2인자인 부총재를 맡는 것이 IDB의 오랜 불문율이었다.
미국의 이번 총재 후보 지명은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주요 중남미 국가들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18일 전했다.
이러한 깜짝 행보의 배경엔 중남미의 복잡해진 정치 지형이 자리 잡고 있다.
중남미 '빅3'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중 멕시코와 아르헨티나는 2018년과 2019년 차례로 우파에서 좌파로의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정권 교체 이후 이웃 브라질 극우 정권과 껄끄러운 사이가 됐다.
이러한 가운데 아르헨티나는 IDB 총재 후보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측근인 구스타보 벨리스를 일찌감치 거론했고, 멕시코도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브라질은 반기를 들고 자체 후보를 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빅3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는 사이 미국이 이례적으로 후보를 냈고, 에콰도르, 파라과이, 콜롬비아, 온두라스, 우루과이 등 중남미 우파 정부가 줄줄이 클래버커론의 뒤에 섰다.
브라질은 경제부와 외교부 공동 성명을 통해 미국의 후보 지명을 환영했다. 지지 의사를 밝힌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미국이 브라질 후보를 지지해주길 바랐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정권으로서도 일격을 맞은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어찌 됐든 IDB 지분 30%를 보유한 미국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다른 후보가 맞서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정부가 "커지는 중남미의 정치적 분열을 이용해" IDB 총재직에 도전했다며, 클래버커론이 총재가 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더라도 향후 5년간 IDB에 측근을 두게 된다"고 설명했다.
멕시코 비영리기구 멕시코외교위원회의 베로니카 오르티스는 블룸버그에 "중남미 내에 단합이 결여된 상태"라며 "의견 일치가 어려워지자 트럼프 대통령에겐 기회의 창이 됐다. 다자기구에 회의적인 트럼프는 이념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이들 기구에 두려고 해 왔다"고 설명했다.
쿠바 이민자 가정 출신의 클래버커론은 백악관 내에서 쿠바와 베네수엘라 사회주의 정부에 대한 강경책을 주도해 왔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미 재무부에서도 근무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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