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있는 베네수엘라 금 31t 누구 것?…'두 대통령' 공방

입력 2020-06-20 02:22  

영국에 있는 베네수엘라 금 31t 누구 것?…'두 대통령' 공방
베네수 중앙은행이 영란은행에 위탁한 금 접근권 두고 소송전
"베네수 실질 통치자는 마두로" vs "영 정부가 인정하는 건 과이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베네수엘라 '두 대통령'의 정통성 다툼이 이번엔 영국을 무대로 펼쳐진다. 영란은행이 보유 중인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의 금 31t을 둘러싼 공방이다.
영국 법원은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이 영란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심리를 내주 시작한다고 로이터통신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앞서 지난달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쓸 수 있도록 영란은행에 위탁 보관 중인 금을 인출하게 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영란은행 지하 금고엔 베네수엘라뿐 아니라 각국 중앙은행의 금이 보관돼 있다. 한국은행이 보유한 금괴도 이곳에 있다.
단순히 위탁 보관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유권은 당연히 위탁한 고객에게 있다.
그럼에도 영란은행이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이 맡긴 금을 내주지 않는 것은 베네수엘라의 복잡한 정치 상황과 관련이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2018년 5월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후 야권은 부정 선거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도 잇따라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영국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로이터에 따르면 당시 외교장관이던 보리스 존슨 총리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경제적 고삐를 조여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제재 불안감이 커진 마두로 정권은 영란은행에 금 인출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2018년 말 런던까지 날아간 베네수엘라 중앙은행 총재에게 영란은행은 '권한 문제'가 있어 인출을 허가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듬해 1월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고 나서자 영국은 미국 등과 더불어 과이도를 베네수엘라 수반으로 인정했다. 과이도는 내각은 물론 중앙은행 이사회도 자체적으로 구성했다.

공식적으로 영국 정부가 과이도를 베네수엘라 정상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영란은행 역시 마두로 정권하에 있는 중앙은행의 금 인출 요구에 더욱 응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금 인출이 거부되자 마두로 정부는 영국에 있는 변호사를 고용해 소송에 나섰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금을 허튼 데 쓰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영란은행이 금 판 돈을 유엔개발계획(UNDP)에 보내면 UNDP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의료품과 식량 등을 사서 베네수엘라에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소송이 제기된 후 영란은행은 법원이 마두로와 과이도가 각각 임명한 중앙은행 이사회 중 어느 곳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지를 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두 대통령' 마두로와 과이도 측 모두 금이 자신의 통제 하에 있다고 말한다.
마두로 측은 베네수엘라를 실제로 통치하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영국 주재 베네수엘라 대사가 어느 정권의 사람인지를 판단해서 금 접근권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이도 의장도 주요국 대사를 자체 임명했으나, 과이도가 이민당국을 장악하진 못한 탓에 영국은 마두로가 임명한 대사를 계속 인정하고 있는 상태다.
반면 과이도 측은 영국 정부가 베네수엘라 행정 수반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법원의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 법원의 결정은 다른 나라에 있는 베네수엘라 자산의 소유권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선례가 될 전망이다.
이번 공방의 결론은 8월이나 9월께 나올 것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mihy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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