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두 군인 '샤를'의 엇갈린 운명

입력 2020-06-22 07:07  

[특파원 시선] 두 군인 '샤를'의 엇갈린 운명
드골 BBC 항전연설, 2차대전 독일·프랑스 정전협정 모두 80주년
허망하게 무너지던 프랑스의 1940년 6월…역사 앞에 엇갈린 두 군인의 길
결사항전 택한 드골, 영원한 '장군'…휴전협정 서명 윈티제르 나치 부역자로 남아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 "명예, 상식, 조국이 모든 자유 프랑스인에게 각자 위치에서 싸움을 계속할 것을 명령한다. 자유 속에 살려는 모든 프랑스인은 나를 따르라. 자유 프랑스여 영원하라."
1940년 6월 18일 독일의 진격으로 프랑스가 시시각각 무너지던 순간, 다급히 도움을 청하러 런던으로 건너간 샤를 드골은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배려로 BBC 방송 마이크 앞에 섰다.
그러나 독일에 대한 결사 항전을 촉구한 드골의 이 연설을 당시 실제로 프랑스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이는 많지 않았다.
두려움에 떨던 프랑스인들은 직전까지 전쟁부(국방부) 차관이었던 드골의 이름을 듣고도 대부분 그가 누군지 몰랐을 만큼 드골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하지만 독일과의 전쟁을 세계대전으로 규정하면서 레지스탕스(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지하항전)를 처음으로 촉구한 이 연설은 드골이 자신을 본격적으로 프랑스 현대사에 각인하기 시작한 역사적인 장면으로 남아있다.
드골의 추종자를 자임해온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드골의 항전 연설 80주년인 지난 18일,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시에 프랑스 최고영예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직접 수여했다. 프랑스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드골을 품어줘서 고맙다는 뜻이었다.

# 드골의 항전연설 나흘 뒤인 6월 22일 파리에서 북쪽으로 100㎞ 떨어진 콩피에뉴 숲.
아돌프 히틀러의 지시로 숲 가운데 공터로 끌어내어 진 열차 객차 안에서는 나치 독일과 프랑스의 정전협정 서명식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겉으론 정전협정이었지만 실제는 독일의 프랑스 침략을 공식화하는 의식이었다.
완벽한 복수를 꿈꾸던 히틀러는 1차대전에서 독일이 프랑스에 패해 1918년 휴전에 조인했던 콩피에뉴 숲의 바로 그 열차 객차를 협정식 장소로 택했다.
프랑스 대표인 샤를 윈티제르 장군과 독일 대표인 빌헬름 카이텔 장군이 각자 서명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는 이렇다.

-당신은 군인이죠, 장군님. 그 군인에게 호소합니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이 일을 훗날 후회하는 일이 없으면 한다는 것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윈티제르)

-당신들은 유능하고 용기 있게 당신 국가의 이익을 지켜냈소. (카이텔)

-그 말을 기억하겠습니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니 말을 삼가겠습니다. (윈티제르)


침략국이 강제하는 문서에 서명해야 하는 패장의 비애, 망설임, 회한 같은 감정들이 윈티제르의 떨리는 음성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치 독일이 프랑스에 강요한 정전 조건은 굴욕 그 자체였지만, 이미 강력한 독일에 맞서 전쟁에서 이길 만한 수단을 모두 상실한 프랑스로서는 히틀러의 요구를 거역할 길이 없었다.
프랑스는 함대와 공군 전투기들을 몽땅 독일군에 넘겨야 했고, 수도 파리를 비점령 지역으로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나치를 비판하며 전쟁 전 프랑스로 망명한 사람들(주로 유대인)을 모조리 넘기라는 독일의 요구에 인권과 국제법을 거론한 것은 허망한 일이었다.
이런 협상의 일거수일투족은 79년이 흐른 작년, 전체 녹음이 처음으로 공개되면서 프랑스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시 건드렸다.
히틀러의 명령으로 정전협정 전후로 독일 정보기관이 비밀리에 78차례에 걸쳐 6시간 분량을 녹음한 디스크들이 2015년 독일의 한 경매에 나왔고, 프랑스인 수집가의 손에 들어가 작년 2월 처음으로 다큐멘터리 방송으로 세상에 공개됐다. 이후 이 디스크들은 프랑스 국가기록원에 기증됐다.
프랑스 학계는 이 디스크들을 히틀러가 프랑스 정부를 이끌던 필리프 패텡에게 보내 독일에 대한 부역을 강요하는 협박자료로 두고두고 활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작년 공영방송 프랑스텔레비지옹의 다큐멘터리 방영 외에 다른 프랑스 언론들은 이 역사의 상처를 다시 헤집는 녹음의 존재를 그다지 관심 있게 보도하지는 않았다.

# 공교롭게도 이름이 같은 '샤를'(Charles)이었던 80년 전의 두 프랑스 장군은 이렇듯 불과 나흘 차이로 역사 속에서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 누가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를 알았겠는가.
드골은 BBC 연설 이후 연합국을 상대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프랑스 레지스탕스 조직의 통합을 이뤄냈고, 연합국의 승리 후에는 프랑스를 세계적인 강대국의 반열에 다시 올려놓는 데 중추의 역할을 했다.
프랑스 제5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드골이 세상을 뜬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프랑스인들은 여전히 그를 언급할 때 대통령이 아닌 '제네랄'(장군)이라는 영예의 칭호를 붙인다.
반대로, 망설이며 휴전문서에 프랑스를 대표해 서명했던 윈티제르는 비시정부의 국방장관으로 유대인 추방법에 서명하는 등 나치에 협력하다가 1941년 11월 비행기 사고로 숨졌다.
매년 6월 18일이면 드골의 항전 연설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프랑스에서 히틀러에게 나라를 무력하게 빼앗긴 6월 22일은 가급적 언급을 피하고 싶은 날일 것이다.
드골의 탄생 130주년, BBC 항전 연설 80주년, 서거 50주년인 올해는 더더욱 그럴 것 같다.

yongl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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