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코로나19로 새삼 조명된 '영국식 정원' 빈부격차

입력 2020-06-26 07:07  

[특파원 시선] 코로나19로 새삼 조명된 '영국식 정원' 빈부격차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영국인의 정원(garden) 사랑은 남다르다.
자연이나 전원의 풍경을 지향하는 영국식 정원은 그 자체가 하나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평가받는다.
오죽하면 영화 제목에마저 '영국식 정원'이란 말이 쓰였을까.
아파트에 열광하는 한국과 달리 영국에서 좋은 집이란 무릇 크고 넓은 뒤뜰을 가진 단독주택을 말한다.
런던이나 교외 주택가를 지나가다 보면 앞마당이나 뒤뜰을 정성스레 가꾸는 영국인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누구에게나 공개된 앞마당보다는 거주자만이 접근할 수 있는 뒤뜰이 핵심이다.
지은 지 수십 년 된 오래된 단독주택의 뒤편으로 돌아가면 웬만한 식물원 못지않을 정도로 다양한 꽃과 나무로 정성 들여 가꾸어진 뒤뜰을 만날 수 있다.
영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조치를 완화하면서 제일 먼저 영업 재개가 허용된 곳이 정원용품 등을 파는 가든 센터라는 점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영국에서 정원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더 주목받고 있다.
지난 3월 중순 이후 도입된 봉쇄조치로 재택근무, 휴교 등이 불가피해졌고, 이로 인해 가족 구성원들이 종일 집에서 지내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정원이나 외부 마당의 존재는 특히 중요해졌다.
넓은 정원을 자랑하는 이들은 봉쇄조치 기간에도 정원에서 운동을 하고, 가족끼리 애프터눈 티를 즐기며, 바비큐 파티를 하면서 일상을 소화했다.
여름에 접어들자 정원 내 수영장을 갖춘 이들은 무더운 날씨를 마음껏 즐기기도 했다.
석 달가량 이어진 봉쇄조치에도 이들은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에 큰 위협을 받지 않았다.
영국 엑서터 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개인 정원에 대한 접근권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못한 이보다 정신적으로 훨씬 행복(웰빙)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누구나 다 정원을 가진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파트나 연립주택에 거주하는 이들은 단독 정원이나 마당이 없다 보니 꼼짝없이 집에서 갇혀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공원 등에서의 운동이 허용됐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봉쇄조치는 이들에게 한층 더 가혹하게 작용했다.
영국의 정치문화잡지 뉴스테이츠맨에 따르면 영국 8가구 중 1가구는 정원이 없는 곳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흑인들은 사적인 야외공간을 갖고 있지 못한 경우가 백인의 4배인 것으로 조사됐다.
반숙련직이나 비숙련직 육체노동자, 임시노동자, 실업자는 관리 및 행정, 전문직 종사자에 비해 정원이 없는 곳에서 살 확률이 3배인 것으로 추정됐다.
봉쇄조치가 이어지자 공영 BBC 등 영국 방송에서 '정원에서 운동하는 법', '정원에서의 축구 연습' 등의 제목으로 다양한 활동을 안내했지만, 정작 정원이 없는 이들에게는 쓸모없는 콘텐츠에 불과했다.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바이러스는 평등하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영국에서 삶의 방식은 정원이라는 특정한 공간의 부상으로 인해 오히려 이전보다 더 큰 격차와 불평등의 상처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부동산 업계는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향후 2년간 정원이나 발코니를 가진 주택에 대한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가 저소득층이나 노동자 계층의 '정원 딸린 내 집 마련'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pdhis9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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