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방송 매일 마스크 안 쓴 시민 '고발 인터뷰'
5∼21일 마스크 쓰기 의무화…경제난에 봉쇄령 시행 '주춤'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 국영방송은 최근 기자가 거리와 식당, 시장을 돌아다니며 마스크를 쓰지 않은 시민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이유를 묻는 고발성 인터뷰를 매일 내보내고 있다.
1일(현지시간) 방송된 인터뷰에서도 이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이 얼마나 해이해졌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코로나19 감염자가 다시 많아진다는 걸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시민은 "물론 안다. 그렇지만 관심 없다"라고 답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한 시민은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날씨가 더워져 마스크 쓰기가 귀찮다"라며 무엇이 문제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또 다른 시민은 "나는 마스크를 안 쓴다. 상관 마라. 우리는 언젠가 죽는 것 아니겠냐"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답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유와 핑계는 다양했다.
"지금 급한 용무를 보러 가느라 깜박했다", "주로 자가용을 타기 때문", "천식 탓에 마스크 쓰기가 너무 힘들다"는 시민들의 대답이 국영방송으로 보도됐다.
기자가 "코로나19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며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권유하자 한 시민은 "호주머니에 마스크가 있다. 쓸 시간이 없다"라며 지나쳐 갔다.
다른 시민은 "사람들이 이제 코로나19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게 예전으로 되돌아갔다"라며 "자신도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우려했다.
마스크를 쓴 한 시민은 인터뷰에서 "위생 수칙, 거리 두기를 지키는 사람이 없다시피 해 어디를 가나 붐빈다"라며 "다른 사람의 건강을 존중하지 않는다"라고 불만은 터트렸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테헤란 시내에선 여성과 택시·버스 운전사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오래 일해야 하는 이가 주로 마스크를 쓸 뿐 대부분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각에선 이란 정부가 마스크 공급에 노력을 기울이지만 민생고에 시달리는 이란 서민층이 새 마스크를 매일 바꿔 쓸 만큼 여윳돈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란에선 코로나19 일일 확진자와 사망자가 지난달부터 다시 증가해 재확산이 뚜렷해졌다. 최근 하루 신규 확진자가 2천500명, 사망자는 140명 정도로 진정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란 정부는 코로나19가 심각한 지역에서 봉쇄 조처를 다시 할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경제난에 이를 쉽사리 실행하지 못해 '엄포'에 그치는 실정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3월에는 위생 수칙을 지키는 시민이 80%가 넘었는데 지금은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라며 마스크 쓰기, 거리 두기와 같은 위생 수칙을 지켜달라고 국영방송으로 호소하기도 했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악화한 경제난이 코로나19로 더욱 심각해지면서 자발적 시민 의식에 방역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지만 '코로나 불감증'이 만연한 터라 이란 보건 당국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자 이란 정부는 5일부터 21일까지 외출 시와 실내에서 마스크를 의무로 쓰는 방역 대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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