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내내 '리셴룽 리더십' 공세…지속적 정치 활동 시사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10일 치러진 싱가포르 총선에서 대중의 관심을 끌었던 리셴룽 총리와 동생 리셴양 간 '형제의 난'은 리 총리의 승리로 끝났다.
리 총리가 이끈 여당 인민행동당(PAP)이 93석 중 83석을 차지한 반면, 리셴양이 입당해 지지를 호소한 전진싱가포르당(PSP)은 한 석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은 국부로 불리는 선친 리콴유 전 총리의 유훈을 둘러싸고 수년 전 벌어졌던 형제간 갈등이 선거판으로 옮겨붙은 자리였다.
1965년 독립 이래 싱가포르 정·재계를 사실상 주물러온 리콴유 초대 총리 집안 형제간 파열음은 2017년 불거졌다.
선친의 유훈을 둘러싸고 리 총리와 남동생 리셴양, 여동생인 리웨이링 싱가포르 국립 뇌 신경의학원 원장 간 사이가 급격히 벌어진 것이다.
동생들은 리 총리가 사후에 자택을 허물라는 유언을 어기고 이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면서 '왕조 정치'를 꿈꾼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리 총리가 아들인 리홍이에게 권좌를 넘겨주려 한다고도 주장했다.
리 총리는 동생 가족에 의한 유언장 조작설을 제기했고, 리셴양은 다시 국부펀드 테마섹 최고경영자이자 형수인 호칭이 선친의 문서를 절도한 의혹이 있다고 맞서는 등 양측간 갈등은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했던 '형제의 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와중에서 치러진 이번 총선에서 활화산으로 타올랐다.
리 총리는 '총선판 형제의 난'에 관심이 집중되자 선거는 싱가포르의 미래를 위한 것이지, 집안싸움에 관한 것이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그러나 리셴양은 달랐다.
후보로 뛰지는 않았지만, SNS와 언론을 통해 현 정부에서는 소수 엘리트만 혜택받고 다수 시민은 좌절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표적 강소국으로 1인당 국민소득 세계 8위라는 '빛'에 가려진 소득 불평등이나 이민자 문제와 같은 '그림자'를 들춰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왜 후보로 나서지 않았느냐는 언론 질문에는 "싱가포르 정치계에 또 다른 리(Lee)씨는 필요 없다"며 형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지명직 의원을 역임한 싱가포르 경영대 유진 탄 교수가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선친인 리콴유 전 총리가 세상을 떠난 해 치러진 2015년 총선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할 정도로 이례적 상황이었다.
역대 총선에서 여당의 '싹쓸이'를 지켜보기만 할 정도로 야당 존재감이 미약한 싱가포르 정치권에서 '국부 가문' 현직 총리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리셴양의 행보는 야당에 어떤 식으로든 힘이 됐을 거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탄 교수는 "모든 총선에는 변화를 요구하는 야당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올해는 리셴양이 야당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에 그 요구가 더 강하다"고 평가했다.
AFP 통신도 정부 여당에 대한 경쟁자들의 존재감이 약한 가운데, 리셴양의 PSP 참여는 다른 야당들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 형의 '벽'을 절감한 리셴양의 총선 이후 행보는 미지수다.
그러나 그는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선거 이후 행보에 대해 "좋은 시민이 되는 것, 그리고 정치적으로 깨어있고 그것에 관여하는 것이 계속되는 과정"이라고 말해 정치적 행보를 중단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야당이 55년 역사상 최다인 10석을 차지하면서 여당에 '빨간 불'이 켜진 상황에서 리 총리가 헹스위킷 부총리로의 총리직 승계 작업을 늦출 경우, 총선 이후로도 상당 기간 '형제의 난'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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