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특별지위 박탈…해외로 유학 신청·이민 문의 급증
"홍콩 남을 이유 없어" 홍콩 밖 이전 추진하는 기업 늘어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홍콩이 미국과 중국간 갈등의 첨예한 전선으로 떠오르면서 홍콩의 '글로벌 금융 허브' 지위가 직격탄을 맞고, 인재와 기업의 '홍콩 탈출'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강행한 중국에 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홍콩에 대한 특별대우를 끝내겠다며 '홍콩 정상화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은 홍콩 민주화를 약화하는 이들의 미국 내 자산 동결과 홍콩의 수출 관련 우대 조치를 없애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홍콩 여권 소지자에 대한 우대 조치를 철회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특혜도 없고, 홍콩보안법도 불안해" 기업들 짐 쌀 채비
경제, 무역 부문의 특별 혜택이 없어지는 데다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불안에 떠는 홍콩 진출 외국기업들이 홍콩 밖 이전을 검토하면서 홍콩의 '글로벌 금융 허브' 위상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홍콩은 총수출액 5천498억 달러, 총수입액 5천893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 규모를 자랑한다.
인구 750만 명에 불과한 도시인 홍콩이 이 같은 막대한 무역 규모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달러 거래의 편리성, 관세 혜택, 규제 위험 회피 등의 이유로 수많은 기업이 홍콩을 중계무역 기지로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홍콩에 부여했던 관세 혜택을 박탈하고 각종 규제를 가한다면 중계무역 도시로서 홍콩이 가졌던 이점은 사라지고, 홍콩에 진출한 많은 기업이 홍콩에 머물러야 할 이유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무역전쟁 전인 2018년 1월 미국의 대중 관세율은 평균 3.1%였지만, 무역전쟁 후에는 19.3%로 치솟았다. 반면에 홍콩은 평균 2%의 낮은 관세율 혜택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홍콩은 이제 본토 중국과 똑같은 대우를 받게 될 것"이라며 "특혜도 없고, 특별한 경제적 대우도 없고, 민감한 기술 수출도 없다"고 밝혔다.
홍콩에 진출한 금융기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보안법 시행에 관여한 중국 관리들과 거래하는 은행을 제재하는 내용의 '홍콩자치법'에 서명한 것에 대해서도 그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만약 홍콩보안법에 관여한 홍콩 정·관계 인사들이 거래하는 홍콩의 주요 상업은행 중 한 곳만 제재 대상으로 지정해도 홍콩의 금융 시스템 전반에 대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러한 우려들이 겹치면서 홍콩을 떠날 채비를 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지난달 주홍콩 미국 상공회의소가 홍콩에 진출한 미국 기업 등 180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30%가 홍콩보안법으로 인해 홍콩 이외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전 고려 지역으로는 미국, 영국, 싱가포르, 대만 등을 꼽았다.
미국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홍콩보안법으로 홍콩 내 취재 활동에 제약이 생겼다면서 홍콩 사무소 일부를 서울로 이전한다고 밝혔다.
NYT 외에도 그동안 홍콩에 아시아 본부를 뒀던 미국, 유럽 등의 신문사, 방송사, 통신사 등이 아시아 본부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거나, 홍콩 내 인력 규모를 줄일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홍콩에서 못 살겠다" 유학 신청 크게 늘고, 이민 문의 급증
트럼프 대통령은 "홍콩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는 박탈됐으며, 홍콩이 더는 자유시장들과 경쟁할 수 없을 것"이라며 "많은 사람이 홍콩을 떠날 것으로 나는 의심해 마지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경고를 입증이라도 하듯 홍콩에서는 유학, 이민 등으로 홍콩을 떠나려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올해 홍콩 대입시험(DSE)을 치르는 홍콩 학생의 수는 5만2천여 명으로 2012년 새 대입제도 도입 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에 대만, 유럽, 호주, 미국 등으로 해외 유학을 떠나려는 학생은 크게 늘어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대만 당국에 따르면 올해 대만에서 학사학위 과정을 밟길 원하는 홍콩 유학생의 수는 크게 늘어 지난해보다 69% 급증했다.
홍콩 학생의 영국, 호주 유학을 지원하는 기관인 애스턴 에듀케이션에 따르면 영국과 호주의 고등학교, 대학교 등으로 유학을 원하는 홍콩 학생의 수는 지난해보다 50% 가까이 늘었다.
미국 대학 한 곳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다는 한 홍콩 고등학생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표현과 사상의 자유가 악화할 것으로 우려한다"며 "내가 학문을 연구하다가 (홍콩보안법이 금지하는) '레드라인'을 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홍콩 생활을 접고 아예 이민을 떠날 것을 고려하는 홍콩 시민의 수도 크게 늘었다.
홍콩 경찰에 따르면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홍콩보안법을 제정한 지난달 '양민증'(良民證)으로 불리는 무범죄 기록 증명서를 발급한 건수는 2천782건에 달해 전월보다 63% 급증했다.
양민증이 해외 이민에 필요한 서류라는 점에서 이는 이민을 떠나려는 홍콩인의 수가 크게 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 해외 이민 컨설팅업체 대표는 동방일보에 "지난 5월 말 홍콩보안법 추진이 가시화한 후 캐나다, 호주, 미국 등으로 해외 이민을 문의하는 사람의 수가 그 이전보다 3배로 급증했다"고 전했다.
다만 아직 홍콩인의 대규모 해외 이주가 현실화하지는 않아 홍콩보안법 시행과 미국의 맞대응이 불러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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