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물 같은 심해 어둠 속에 숨은 '울트라 블랙' 물고기 비밀 풀어

입력 2020-07-17 10:47  

먹물 같은 심해 어둠 속에 숨은 '울트라 블랙' 물고기 비밀 풀어
심해이빨흑고기 등 16종 이상 빛 99.5% 이상 흡수하는 피부 가져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깊은 바다의 먹물 같은 어둠 속에서 검은색을 넘어 빛의 99.5% 이상을 흡수해 거의 보이지 않는 '울트라 블랙'(ultra black) 물고기들의 비밀이 밝혀졌다.
미국 듀크대학과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따르면 이 대학 생물학자 죈케 욘센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심해이빨흑고기'(Anoplogaster cornuta)를 포함해 적어도 16종이 일반 검은 물고기와는 다른 피부를 가졌으며, 피부세포 내 작은 색소 덩어리의 형태와 배열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생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 최신호에 발표했다.
심해에는 빛이 거의 없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지만 스스로 빛을 내 먹이활동을 하거나 포식자를 피하는 어종이 많아 웬만큼 검어서는 "운동장에서 숨바꼭질하듯 숨을 곳이 없어" 생존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연구팀은 멕시코만과 몬터레이만의 1.6㎞ 깊이 심해에 서식하는 39종의 검은 물고기를 저인망과 원격조종 로봇으로 붙잡아 선상에서 분석했다.
물고기 피부에서 반사되는 빛의 양을 분광기로 분석한 결과, 16종이 빛의 0.5% 미만만 반사해 일상에서 접하는 검은 물체보다 20배 이상 검고, 빛 반사율도 낮았다.



울트라 블랙 물고기 중 가장 검은 것으로 밝혀진 골프 티보다 작은 아귀목의 심해어는 거의 완벽한 검정으로 빛의 0.04%만 반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정도 슈퍼 검정은 파푸아뉴기니 극락조의 검은 깃털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연구팀은 울트라 블랙 피부를 가진 물고기들이 빛을 모두 흡수하는 바람에 사진을 찍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동물학자 카렌 오즈번 연구원은 "빛을 모두 흡수하는 바람에 카메라나 조명을 어떻게 설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했다.
연구팀은 이 물고기들의 울트라 블랙 피부를 전자현미경에 놓고 수천 배로 확대한 결과, 일반 검은 물고기 피부와 확연한 차이를 발견했다.
양쪽 모두 피부에 인간의 피부색을 결정하는 것과 같은 색소인 멜라닌을 가진 세포 내 작은 구조인 '멜라노솜'(melanosome·멜라닌과립)을 갖고 있지만 형태나 배열은 크게 달랐다.
일반 검은 물고기는 멜라노솜이 작은 진주 형태를 띠었지만 울트라 블랙 물고기는 이보다 더 크고 길쭉한 형태를 가졌다. 또 일반 검은 물고기는 멜라노솜 간에 빈틈이 있지만 울트라 블랙 물고기는 서로 잇닿아 있어 밀도도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물고기 피부의 멜라노솜 형태와 크기를 바꿔가며 실험한 결과, 울트라 블랙 피부를 가진 물고기들이 빛을 흡수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구조를 가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논문 제1저자인 죈케 욘센 교수 연구실의 박사과정 대학원생 알렉산더 데이비스는 울트라 블랙 피부를 가진 물고기들은 이를 이용한 위장술로 사냥을 하거나 포식자를 피할 때 이점을 갖는다면서 일반 검정보다 더 검음으로써 6배 더 가까운 거리에서도 상대방에게 노출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결과가 빛을 반사하지 않고 가둘 수 있는 새로운 물질 개발로 이어져 태양광 패널에서 망원경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eomn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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