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수위까지 10m가량만 남아…댐 건설 후 가장 수위 높아져
"싼샤댐이 왜 못 막아주나" 불만도…1998년 대홍수 악몽에 당국 '진땀'
(이창[중국 후베이성]=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185m 높이의 거대한 회색 콘크리트 장벽이 집채만한 하얀 물기둥을 맹렬한 기세로 뱉어내고 있었다.
21일 오후, 중국 창장(長江·양쯔강)에 세워진 세계 최대 수력발전용 댐인 싼샤(三峽)댐은 상류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물줄기와 한바탕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었다.
약 3㎞ 길이에 달하는 싼샤댐을 사이에 둔 창장 동서 양측은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초록빛이 맴도는 댐 안쪽의 인공 호수 수면은 비교적 잔잔했다. 그러나 싼샤댐이라는 관문을 돌파한 물줄기는 거칠게 일렁이며 중·하류 지역으로 거칠게 내달리고 있었다.
싼샤댐에서 만난 한 이창(宜昌)시 주민은 "싼샤댐에 여러 번 와봤지만 오늘처럼 강물이 이렇게 무서운 모습으로 흘러가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6월부터 한 달 넘게 계속된 폭우로 창장 일대의 중국 남부 지방에 1998년 대홍수 이후 최악의 물난리가 난 가운데 중국인들은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복잡한 시선으로 싼샤댐을 바라보고 있다.
◇ 장마 아직인데…벌써 만수위까지 바라보는 싼샤댐
이날도 싼샤댐에는 굵은 빗줄기가 떨어졌다. 댐의 수위는 어림잡아 최고 수위인 175m까지 10m가량만 남겨둔 상태로 보였다.
현장에서 만난 싼샤댐 관계자는 선박이 지나는 수로 인근에 박힌 길쭉한 직육면체 모양 콘크리트 구조물을 가리키면서 "저기 표시된 것이 최고 수위"라고 말했다.
최근 싼샤댐의 수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중국 당국은 실시간으로 수위를 공개하지 않는다. 관영 매체들의 간헐적인 보도로만 싼샤댐의 정확한 수위를 알 수 있다.
중국 매체가 전한 지난 20일 오후 2시 수위는 164.4m. 2006년 싼샤댐 완공 이후 가장 높은 수위다.
싼샤댐을 관리하는 싼샤그룹에 따르면 185m 높이 댐의 '정상 홍수 조절 수위'는 145∼175m다.
올해 처음 방류를 시작한 지난달 30일까지만 해도 수위는 147m였다. 그런데 20여일 만에 20m 가까이 수위가 올랐다.
유입량이 최고조에 달한 지난 18일 최대 유입량은 초당 6만1천㎥에 달했다. 1초마다 올림픽 규격 수영장 24개를 동시에 가득 채울 수 있는 정도의 물이 싼샤댐에 새로 몰려오는 셈이다.
싼샤댐이 방류구를 열었지만 위에서 내려오는 것보다는 적은 양의 물을 내보내 수위가 그만큼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댐의 홍수 조절 능력 상실은 가뜩이나 초대형 홍수 위기에 처한 창장 중·하류 지역 지역에는 재앙 같은 일이다.
천꾸이야(陳桂亞) 창장수리위원회 연구원은 후베이일보에 "7월 말부터 8월 상순까지는 창장 홍수 대응의 관건 시기"라며 "앞으로 창장 상류에 또 홍수가 발생할 수 있어 창장 상황은 여전히 매우 심각한 상태"라고 우려했다.
◇ "왜 위서 물 안 막아주냐"…당국 "싼샤댐이 천하 책임 못 져"
중국 당국은 싼샤댐이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을 막는 역할을 더 수행할 수 있다면서 대중의 불안 잠재우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바오정펑(鮑正風) 싼샤댐 조절센터 주임조리는 최근 CCTV와 인터뷰에서 저수량이 최대 393억㎥인 싼샤댐이 아직도 100억㎥가량의 물을 더 가둬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전역에서 이미 막대한 수해가 난 싼샤댐이 왜 피해를 막아주지 못했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점도 중국 당국으로서는 크게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특히 최근 홍수 피해가 극심해진 안후이성 등 창장 중·하류 주민 중에서는 싼샤댐이 물을 대규모로 방류하는 것에 불만을 표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紅火*'라는 누리꾼은 시나닷컴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서 싼샤댐의 방류 모습을 '장관'이라고 표현한 한 관영 매체를 비난했다.
그는 "(창장) 하류 인민들이 깊은 물과 뜨거운 불에 휩싸여 있는 이때 싼샤댐의 홍수 방류를 '장관'이라니 양심이 없다"고 비난했다.
창장 전역에 오랜 기간에 걸쳐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상류 지역과 중·하류 지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중국 당국이 어려운 선택에 상황에 부닥친 셈이다.
급기야 관영 신화통신은 '싼샤 공정이 있는데 왜 창장의 홍수가 이토록 긴장 상태인가'라는 해명성 기사를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천꾸이야 연구권은 관영 신화통신과 인터뷰에서 "올해 창장 '1호 홍수'가 지날 때 싼샤댐이 다섯 번 브레이크를 밟아 하류로 내려가는 물의 양을 초당 3만5천㎥에서 1만9천㎥로 줄였다"면서 "싼샤댐 공정은 매우 중요하지만 천하를 책임질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가운데 중국 인터넷에서 최근 '싼샤댐 붕괴설'이 또 빠르게 확산한 것은 극도로 불안해진 민심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창장서 황허·화이허까지…초대형 내륙호수들 범람 위기
6월부터 계속된 폭우로 윈난성, 구이저우성, 광시좡족자치구, 후베이성, 장시성, 안후이성 등 중국 창장 일대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물난리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3일 중국 정부가 발표한 피해 중간 집계에 따르면 중국 31개 성·자치구·직할시 중 27곳에 피해가 미쳤다. 141명이 사망·실종됐고, 이재민 3천873만 명이 발생했다. 경제적 손실도 860억 위안(약 1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태의 민감성 때문인지 중국 정부는 수해 관련 전국 집계 상황을 수시로 업데이트해 발표하지 않고 있다. 중국 관영 언론도 지역별로 산발적인 피해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도할 뿐이지 전국의 피해 상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기사를 내보내지 않는다.
지난 19일 안후이성 당국이 하류 대도시가 물에 잠기는 것을 막으려고 창장의 지류인 추허강 농촌 지역의 제방을 폭파해 수위를 낮춘 것은 긴박한 창장 중·하류 지역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런 방식은 1998년 대홍수 때 이래로 쓰인 적이 없었다.
창장 일대의 홍수는 최근 들어 황허(黃河)와 화이허(淮河) 등 중국의 중요 대형 강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포양호, 둥팅호, 타이후 등 중국의 초대형 내륙 호수도 이미 일부 범람했거나 대규모 범람 위기에 처해 있다.
수해 피해가 계속 커지는 가운데 중국에서는 1998년 대홍수의 악몽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1998년 중국에서는 폭우로 창장 대부분 지역이 범람하면서 4천150명이 사망하고 2억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당시 직접 경제 피해액은 1천660억 위안에 달했다.
ch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