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노블 아파트서 화재…10세, 3세 형제 뛰어내리자 시민들이 맨몸으로 받아
어린이들 구하고 손목 골절된 흑인 청년 "뛰어내리기로 결심한 아이들이 영웅"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 시민들이 불이 난 아파트에서 탈출을 위해 뛰어내린 어린이 두 명을 맨몸으로 받아내 목숨을 구했다.
어린이들을 살린 한 흑인 청년은 "우리를 믿고 뛰어내린 아이들이 영웅"이라며 겸손해했다.
23일(현지시간) BFM 방송 등 프랑스 언론들에 따르면, 지난 21일 프랑스 남동부 알프스산맥 자락의 도시 그르노블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자 창문 난간에 매달려 있던 어린이 두 명이 10m 아래로 뛰어내려 목숨을 건졌다.
프랑스 언론들이 보도한 영상에는 검은 연기와 화염이 솟구치는 발코니 옆에서 어린이 한 명이 형의 손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가 아래로 뛰어내리고 그 아래 있던 시민들이 몸을 던져 어린이를 받아내는 긴박한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세 살짜리 동생을 먼저 뛰어내리게 한 열 살짜리 소년도 밑에서 뛰어내리라고 소리 지르는 이웃 어른들의 말을 믿고 뛰어내려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
화염을 피해 10m 아래에서 뛰어내리라고 소리를 지르는 시민들에게 몸을 던진 두 어린이는 화재로 연기를 좀 마시기는 했지만 별다른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화재 현장의 아파트에서 어린이들을 구하는 과정을 주도한 청년 아투마니 왈리드(25)는 아이들을 받을 때의 충격으로 오른쪽 손목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다.
그는 BFM 방송 등 현지 언론들과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비명을 듣고 집을 나가보니 이웃 아파트에서 불이 솟구치는 걸 보고 그 아파트로 곧장 뛰어갔다고 했다.
아파트 계단으로 단숨에 올라간 왈리드는 그러나 불이 난 집의 현관문이 잠긴 상태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시 아래로 내려온 그는 이웃들과 함께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어린 형제들에게 뛰어내리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뛰어내리면 받아주겠다는 이웃 어른들의 말을 믿은 어린이들은 침착하게 아래로 뛰어내렸고 어른들은 힘을 모아 아이들을 받아냈다.
"우리가 애들을 살리긴 했지만 뛰어내리기로 결심한 것은 그 아이들이에요. 그 애들이 영웅이지요"
왈리드는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애들이 뛰어내리는 순간 두려움이 사라졌다. 오직 애들을 잘 받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화재가 일어난 아파트가 있는 곳은 그르노블에서도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주로 모여 사는 빌뇌브 지역으로, 주민들의 경제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곳이라고 한다.
에리크 피올 그르노블 시장은 빌뇌브 주민들의 용기와 위험에 처한 이웃을 도운 행위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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