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미중 수교 이래 첫 영사관 폐쇄…미 "지식재산권 절도 중심지" 주장
중 보복 초읽기…"대선 겨냥 국면전환용 폐쇄…전면전 가지 않을 것" 분석도
(서울=연합뉴스) 안용수 기자 =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영사관 폐쇄로까지 옮겨붙으면서 양국 관계가 냉전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영사관 폐쇄는 국교 단절 직전 단계의 외교적 조치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면 전환용일 뿐 전선이 더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1979년 미중 수교 이래 첫 영사관 폐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요바린다의 닉슨도서관에서 한 연설에서 "휴스턴 총영사관이 스파이 활동과 지식재산권 절도의 중심지였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영사관 폐쇄는 미국이 중국과 수교한 1979년 이래 첫 조치일 만큼 초강수여서 총성 없는 외교전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이 보복 조치로 자국 내 미국 영사관 폐쇄 검토에 나섰고, 미국도 추가 폐쇄 가능성을 열어둬 서로 물러날 수 없는 '치킨 게임'의 양상마저 보이는 형국이다.
양대 강국의 전선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화웨이 퇴출, 홍콩 민주화, 남중국해 군사 대결 등까지 펼쳐지며 가뜩이나 곳곳이 지뢰밭인 상황에 확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반면 미국이 휴스턴을 선택한 데는 중국을 견제하되 전면전까지는 가지 않으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 왜 휴스턴인가…전면전 경계하며 '대내용' 해석도
미국은 자국 내 6개 중국 공관(워싱턴DC·뉴욕·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시카고·휴스턴) 중 휴스턴만 핀셋으로 집듯이 지목했다.
최근 휴스턴 총영사와 외교관들이 공항에서 가짜 신분증을 이용해 중국인을 빼돌리려다 적발됐다는 점도 들었다.
또 지난해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휴스턴 MD 앤더슨 암센터 소속 교수들이 첨단 기술 자료를 넘긴 혐의를 적발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해외 고급 인재를 유치하려는 중국의 '천인계획'(千人計劃)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폐쇄 요구를 받은 휴스턴 영사관에서는 지난 21일 저녁부터 22일 새벽까지 중국 측이 외부 출입을 통제한 채 밤사이 각종 자료를 황급히 소각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그러나 상징성으로 본다면 워싱턴DC가, 해당 지역의 중국인 인구 규모를 생각한다면 로스앤젤레스 등이 훨씬 더 요충지다. 또 미국이 폐쇄 명분으로 세운 지식재산권 절도라면 샌프란시스코 공관을 겨냥하는 게 합리적이다.
명목상 이유가 산업스파이라면, 이면에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고려한 고도의 정치적 반전 카드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사태 때부터 중국과 각을 세우며 반중 메시지를 강화했던 만큼 그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책임을 외부로 돌리는 동시에 대응 실패라는 비판을 피하려는 포석이라는 의미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 중국담당 대표보를 지낸 제프 문은 CNN 인터뷰에서 "지식재산권이 진짜 이유라면 미국은 실리콘 밸리를 관장하는 샌프란시스코 영사관을 폐쇄했을 것"이라며 "중국에 대한 보복과 트럼프의 처참한 코로나19 정책으로부터 관심을 돌리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 '홍콩이냐 청두냐'…중국 보복 초읽기
당연히 중국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미국의 비합리적인 행위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정당한 권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중국이 외부의 공격에 같은 방식과 수준으로 대응해 왔다는 점에서 중국 내 미국 공관 폐지는 정해진 수순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관심은 과연 어느 지역을 선택할 것이냐에 집중됐다.
애초 우한(武漢)의 영사관이 대상에 올랐다. 미국은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하자 영사관에서 인력을 철수시켰다가 최근 복귀하려는 과정에서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한의 영사관이 이미 사실상 기능 정지 상태여서 실질적 타격을 줄 수 있는 곳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중국 정부 입장을 사전에 대변한다는 평가를 받는 후시진(胡錫進) 환구시보(環球時報) 총편집인은 1천명 이상이 근무하는 홍콩 총영사관을 지목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인권 문제로 갈등을 빚는 티베트를 관할하는 청두(成都)도 거론된다.
◇ 휴스턴 영사관 폐쇄 시한 임박…"미국, 균형 잡을 것" 전망
폐쇄 요구 시한을 하루 앞두고 아직 미국의 강제 집행과 같은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 측은 폐쇄를 거부하고 있다.
차이웨이(蔡偉) 휴스턴 총영사는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오늘도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고 있고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겠다"고 밝혔다.
아시아소사이어티 오빌 셸 미중 관계 센터 소장은 CNBC와 인터뷰에서 "미국 대선이 이번 폐쇄 조치에 작용했을 수 있다"며 "그러나 미국은 무역, 지식재산권 등의 이슈에서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과도 균형 잡히고 공정한 관계를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100일도 남지 않은 대선의 분위기 반전을 염두에 둔 조치인 만큼 확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중국 측에서도 전날 외교부 대변인의 성명 발표 이후 후속 조치가 없는 상태다.
더욱이 미국의 화웨이 퇴출에 유럽연합(EU)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이 동조하면서 외교적으로도 우군이 줄어든 상태다. 전면전에 따른 부담도 고려해야 하므로 대응 전략을 신중히 세울 수밖에 없다.
다만 키신저 재단 로버트 달리 소장은 "내년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미중 관계가 결정 날 것"이라며 "현재로서 미중 정상이 어디까지 갈지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aayy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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