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표 박물관 훔볼트포럼의 한국관 계획 면적, 중·일의 10분의 1
'식민주의 반성' 내세운 훔볼트포럼 목표와 역행…식민사관 투영 지적도
한국서 온 당국자들 수차례 방문만…면적 증가시 한국측 유물대여 가능할까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조선은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청나라의 속국이었고, 1905년부터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독일의 수집가들이 한국문화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훔볼트포럼(Humboldt Forum) 한국관 전시 방안에 대한 워크숍에서 홈볼트포럼 측 전시담당자가 한 말이다.
재건 중인 프로이센 왕궁에 들어서는 훔볼트포럼은 박물관 등의 기능을 가진 복합 문화·예술 공간이다.
과거 제국주의를 상징하던 공간에 식민주의에 대한 반성을 담아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아시아 등 비(非)유럽 지역의 유물 등을 전시한다. 식민지 시대에 약탈한 문화재를 전시한 영국의 대영박물관과는 전시의 방향성이 사뭇 다르다.
훔볼트포럼은 우리나라로 치면 재건한 경복궁을 박물관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위치도 베를린의 중심가로 연간 3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박물관 섬' 바로 앞이다. '박물관 섬'에는 역사박물관 등 독일의 주요 국립 박물관 및 미술관이 모여있다.
이런 이유로 '21세기에 독일의 최대 문화 프로젝트'라고 공공연하게 일컬어진다.
워크숍 참석자들이 전한 전시담당자의 '속국' 발언은 담당자의 역사 인식일 수도 있고, 과거 독일 사회의 인식을 설명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현재 예정된 한국관의 규모와 위상 등을 보면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현대로까지 이어진 듯하다.
한국관의 예정된 면적은 60㎡다. 외부에 공개된 일부 도면상으로는 중국관과 일본관의 각각 10분의 1 정도 크기에 불과해 보인다. 확보된 한국의 전시품은 160점에 불과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전시품은 수천점이다. 한국의 전시품이 얼마 되지 않는 점은 면적을 작게 할당받은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다.
더구나 한국관의 위치는 중국관 내의 한쪽에 있다. 관람객들에게 한국 문화가 중국 변방 문화의 하나로 오해받기에 십상일 수 있다.
특히 한국 문화에 대한 이런 대접은 독일 사회가 훔볼트포럼을 만들기로 하면서 내세운 가치와 역행한다.
훔볼트포럼 자리에 있던 프로이센 왕궁은 독일 제국주의의 본산이었다.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빌헬름 1세가 거주하며 제국의 야망을 키워나가던 곳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파손됐다가 동독 시절에 해체돼 인민궁전이 세워졌다. 1990년 독일 통일 후 독일 사회는 치열한 사회적 논쟁을 벌인 끝에 인민궁전을 허물고 프로이센 왕궁을 재건하기로 했다. 다만, 독일 제국주의의 풍모를 복원하려는 의도를 배제하고,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폐해를 드러내는 장소로 만들자는 합의를 전제로 했다.
독일 사회가 나치시대와 유대인 학살 등에 대해 반성을 꾸준히 해온 반면, 과거 식민지였던 나미비아에서의 종족 집단학살 등 식민시대에 대한 반성이 부족했다는 점도 작용했다.
훔볼트포럼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유럽 중심주의적 편향성의 극복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선도자 역할을 하겠다는 독일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형 문화 건축물이자 공간으로 기획된 것이다. 더구나 전시관을 넘어 학술과 문화 교류가 이뤄지는 공간으로 설계되고 있다.
이러한 훔볼트포럼의 상징성을 감안할 때 현재 계획된 수준의 한국관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수 있다. 한국 역사에 대한 굴절된 인식을 훔볼트포럼을 찾는 외국인에게 심어줄 수 있는 점도 문제이고, 한국인 관람객들도 한국관의 상대적 초라함에 낯이 뜨거워질 수 있다.
훔볼트포럼에서 한국관은 지난 2012년 설치가 논의돼 2014년께 훔볼트포럼 주관 단체인 프로이센문화유산재단 및 베를린국립박물관과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이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한국관의 규모 등에 대해서 2014∼2016년 사이에 윤곽이 잡혔다고 관계자들이 전했다.
훔볼트포럼에 들어갈 한국 유물은 베를린의 아시아박물관 등이 확보해 놓은 것이다. 예산 문제로 자체적으로 추가 확보하기는 쉽지 않단다.
이 때문에 훔볼트포럼 측 전시담당자는 한국의 현대미술을 가미하는 실험적인 전시도 고민 중이다. 남북한 등 한반도 현실을 현대미술에 투영해 유물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을 찾아보자는 아이디어도 워크숍에서 제시됐다. 유물만 전시하는 일반적인 박물관과는 다른 시도다.
이런 실험도 의미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한국관의 면적이 추가로 확보되지 않고 배치가 변하지 않는다면 식민주의를 극복하겠다는 훔볼트포럼이 현대 사회에서 왜곡된 식민주의 관점을 지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훔볼트포럼이 한국의 일제강점기에 대한 인식도 갖고 있다면, 반(反)식민주의를 내세운 훔볼트포럼의 기치와 맞아떨어져 한국관 전시에서 이 부분을 강조할 수도 있다.
현지 한국인 예술계 인사들은 한독 간에 MOU가 체결됐는데다 최근 1∼2년 사이 중앙부처 및 문화재 기관 관계자 다수가 베를린을 방문해 훔볼트포럼을 찾은 점을 들면서 한국 당국도 사실상 이 문제를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면적의 추가 확보가 가능하면 한국에서 유물을 대여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한국관을 꾸밀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현지 한국인 예술계에서 나온다. 현지의 한 한국인 예술계 인사는 28일 "훔볼트포럼이 독일의 대표하는 박물관인 만큼, 한국 측의 협조가 어렵지 않을 수 있다"고 관측했다.
훔볼트포럼은 애초 올해 여름께 개관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로 공사와 전시 준비가 지연돼 올해 말 부분적으로 개관한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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