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경 세포에 '성장 인자' 다량 공급…출생 때부터 수십 년 기능
미 메릴랜드 의대 연구진, 국립과학원회보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녹내장은, 시신경 장애가 시야 결손으로 이어져 결국 시력을 상실하는 무서운 병이다.
시신경이 심하게 손상되면 물체를 시각적으로 알아볼 수 없게 된다. 눈을 통과한 빛에 관한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게 바로 시신경이다.
시신경이 왜 손상되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안압 상승으로 인한 시신경 압박과 시신경 혈류 장애 등을 손상의 주원인으로 꼽는다.
그런데 녹내장과 같은 시신경 손상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게임 체인저'가 될 시신경 줄기세포를 미국 메릴랜드 의대 과학자들이 발견했다.
신경 전구세포(neural progenitor cells)로 불리는 이 줄기세포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시신경 조직에 존재하면서 수십 년 동안 신경 세포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할 거로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실제로 이 줄기세포가 없으면 시신경 섬유의 스트레스 내성이 약해져 시신경이 손상되고 녹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이 연구는 메릴랜드 의대의 스티븐 번스타인 안과 교수팀이 수행했고, 관련 논문은 30일(현지시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됐다.
이 발견은 녹내장 등의 치료 개선은 물론이고, 녹내장의 원인에 관한 이론을 새로 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연구팀은 기대한다.
번스타인 교수는 "시신경에서 신경 전구세포가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이 줄기세포가 없으면 시신경은 녹내장 등으로 생긴 손상을 스스로 복구할 수 없어 영구적인 시력 상실이나 장애로 이어진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이 줄기세포를 발견한 곳은, 폭이 1㎜도 안 되는 망막과 시신경 사이의 신경 막이다. 망막에서 나온 장방형 신경세포 섬유는 이 신경 막을 통해 시신경까지 뻗어 있다.
이 신경 막의 전구세포가, 눈과 뇌 사이의 신경 연결을 지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줄기세포는 신경 연결에 성장 인자를 듬뿍 공급해, 안전하게 신경 섬유를 감싸는 일종의 '보호 피복(insulating sheath)' 형성을 도왔다.
실험실 환경에서 이 줄기세포를 길러내는 건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성장 인자의 혼합 비율 등 줄기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유도하는 최적의 조건을 확인하는 게 까다로웠다.
연구팀은 52회의 도전 끝에 신경 막 전구세포 배양에 성공했다.
이렇게 얻은 전구세포는 몇몇 유형의 신경 세포로 분화했는데, 시신경 세포의 복구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교세포도 여기에 포함됐다.
연구팀의 다음 목표는 시신경 전구세포의 복구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것이다.
번스타인 교수는 "일단, 이 줄기세포가 분비하는 핵심 성장 인자만 확인해도, 녹내장과 다른 노화 관련 시력 이상의 진행을 늦추는 칵테일(복합 약물)에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에는 시신경 손상으로 인한 녹내장 환자가 300만 명을 웃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약 4%인 12만 명이 실명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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