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자산 재평가·실행 가능한 방안 도출할 것"
"석유공사, 공적자금 투입해야"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윤보람 기자 = 정부가 빚에 허덕이는 자원공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새판짜기에 나섰다.
부실로 낙인찍힌 기존 해외 프로젝트를 다시 들여다보고, 재평가한 뒤 구조조정 전략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2일 "그동안 셰일가스 혁명이 본격화하고,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자원시장의 판이 많이 흔들렸다"면서 "2년 전 평가했던 해외 프로젝트의 내재적 가치가 지금은 달라진 만큼, 2년 전 시각으로 봐선 안 된다. 바뀐 시장환경에 맞춰 다시 한번 짚어 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산업부는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된 '해외자원개발 혁신 2차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이와 함께 자원공기업 재무 상황과 해외 프로젝트를 재평가하는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용역 결과를 토대로 2차 혁신 TF가 구조조정 및 부실처리에 관한 전략, 해외투자에 관한 방향과 원칙을 제시해주길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 "실행 가능한 구조조정 방안 도출할 것"
최근 첫 모임을 가진 2차 혁신 TF의 한 위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구조조정 및 부실처리와 관련) 실행 가능한 방안을 도출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지금처럼 국제유가가 40달러대를 지속하거나, 혹은 유가가 오를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가와 연동해서 (해외 부실 프로젝트) 처분 시기나 방안을 달리하는 등 몇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공기업들이 해외 유전이나 가스전을 탐사하고 앞다퉈 사들이던 2008∼2012년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었다. 그러나 2015년 50달러대로 반 토막이 났고, 현재는 40달러 초반에 머물고 있다.
유가가 높았던 때 사들였던 해외 프로젝트는 고스란히 부실로 이어져 공기업들을 빚더미에 올려놨다.
각사 재무상태표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036460], 광물자원공사 3개 자원공기업의 작년 말 기준 부채는 55조7천억원에 이른다. 4년 전인 2015년 55조9천억원과 별반 차이가 없다. 2년 전 정부가 꾸린 1차 혁신 TF가 구조조정의 큰 틀을 제시했으나, 사실상 성과로 이어지진 못한 것이다.
◇"부채 늪에 빠진 석유공사, 공적자금 투입해야"
현재 대책 마련이 가장 시급한 건 석유공사다. 2차 TF 관계자는 "이번에는 석유공사 자산을 잘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석유공사의 작년 말 기준 부채는 18조1천억원, 부채비율은 3천21%에 이른다. 4조8천억원이 투입된 캐나다 하베스트 유전 인수, 1조원가량 투입된 이라크 쿠르드 유전-사회간접자본(SOC) 연계 사업 등 이명박 정부 시절 차입에 의존해 무리하게 벌였던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실패한 탓이다.
저유가 기조로 수익이 급락한 데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기침체로 해외 자산매각도 지연돼 올해는 부채비율이 작년보다 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석유공사는 올해 1월 자회사인 영국 다나페트롤리엄이 소유한 북해 톨마운트 가스전 지분 중 절반(25%)을 현지 업체 프리미어오일에 매각한다고 발표했으나 지난달 돌연 무산됐다. 프리미어 측이 코로나 사태로 채권자들이 반대해 계약 이행을 못 한다고 취소를 통보한 것이다. 지분 매각으로 3억 달러 상당의 자금을 마련하려던 석유공사 자구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석유공사는 자원개발만 하는 사업 특성상 저유가의 직격탄을 맞아 지금 가장 힘들다. 저유가에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상황이다 보니 자본잠식 우려마저 나온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인력구조 조정이나 인건비 절감 같은 자구노력은 효과가 얼마 없다"면서 "늪에 빠져있는 상태라 결국은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과거 1차 TF는 선(先) 구조조정, 후(後) 정부 지원 원칙을 내세웠다. 정부 관계자는 "공적자금 투입에 대해 2차 TF가 이번에는 어떤 결론을 낼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가스공사 역시 작년 말 기준 부채 총액은 31조1천650억원, 부채비율 383%에 이른다. 캐나다 웨스트컷뱅크 가스정 사업, 이라크 아카스 가스전 등의 자원개발 사업 실패 등으로 타격을 입었다.
2차 TF 관계자는 "가스공사는 그나마 형편이 낫지만, 그렇다고 그냥 놔둬도 되는 상황은 아니다. 유가 하락 등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광물공사-광해공단 통합" 지자체 반대가 걸림돌
광물자원공사는 2016년부터 자본잠식 상태다. 조(兆)단위가 투입된 해외자원개발 사업 때문이다.
작년 말 기준 투자비 1조6천963억원(지분 76.8%)이 들어간 멕시코 볼레오 동(銅)광산 산업과 2조1천945억원(지분 33%)이 투입된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 광산, 8천350억원을 들인 파나마 코브레파나마 동광산 사업이 대표적이다.
자원공사는 이들 자산의 매각을 추진 중이지만,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매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공사 관계자는 "같은 광종의 매수자를 찾아야 하다 보니 거래 상대가 제한돼 있고, 조단위 사업이어서 자금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시장 자체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공사가 궁지에 몰렸다는 사실이 해외시장에 퍼져있어 매수 의향자들이 헐값에 인수하려 든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자본잠식에 빠진 공사의 채무불이행을 막기 위해 광물자원공사를 강원랜드[035250] 대주주인 한국광해관리공단과 통합해 한국광업공단을 신설하는 내용의 '한국광업공단법'이 발의된 상태다. 20대 국회에서도 같은 법안이 발의됐지만, 강원도 내 폐광지역 주민 등이 반발하면서 자동폐기됐다가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장섭 의원이 다시 발의했다.
그러나 강원 폐광지역 사회단체와 광해관리공단, 강원도의회 등은 "통합될 경우 광해관리공단이 보유한 1조원이 넘는 강원랜드 주식과 여유자금이 광물자원공사 운용과 부채상환으로 충당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대하고 나서 진통이 예상된다.
◇ "해외자원개발, 지금이 적기"
정부가 자원공기업 부채 문제 해결을 서두르는 것은 사실상 중단된 해외자원개발 기능을 다시 작동하기 위해서다.
박중구 2차 혁신 TF 위원장도 "우리나라는 국가 에너지 자원의 94%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는 에너지 수입국"이라며 "우리에게 자원개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안정적인 국가 에너지 공급 및 국가 경제를 뒷받침하는 근간"이라고 언급했다.
저유가와 코로나 19 여파로 해외 매물이 쏟아지는 지금이 자원개발 적기라는 주장도 많다.
정부 관계자는 "전체적인 시류는 적기인 것은 맞지만, 결국은 개별 프로젝트가 중요하다"면서 "그동안 부실 처리가 우선이었지만, 신규 투자 거리가 있다면 개별 기업들이 판단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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