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명 터키 여성들 이스탄불 거리서 항의 시위
지난달 27세 여성 전 남친에 살해된 후 항의 거세져
가정폭력으로 숨진 여성 올해 205명, 작년 417명
CNN "터키 여성들 목숨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와"
(서울=연합뉴스) 홍준석 기자 = 5일(현지시간) 터키의 가장 큰 도시 이스탄불 거리에서는 수백명의 여성들이 정부에 여성 폭력을 금지한 이스탄불 협약을 유지하고 가정폭력을 근절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집회 참가자들은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 "결정권은 우리에게 있다" 등 구호를 외쳤다.
이스탄불 협약은 2011년 5월 유럽의회에서 부부간 성폭력과 할례 등 전통과 문화, 종교 등을 이유로 여성에게 행사되는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협약 참여 국가에 관련 규정을 마련토록 의무화하고 있다.
터키 여성들은 가정폭력 사건이 늘어나는 가운데 목숨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온 것이라고 미국 CNN 방송이 보도했다.
지난달에는 터키 여성 피나르 굴테킨(27)이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됐다.
올해들어 최근까지 터키에서 가정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여성은 205명이며, 작년에는 417명에 달했다.
그런데도 터키 정부는 여성을 가정폭력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 한 이익단체는 이스탄불 협약이 전통적인 가족관과 여성관을 무너뜨리고 서양의 가치관을 들여오는 것이라고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에 로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AKP의 누만 쿠르툴무시 부대표는 이스탄불 협약을 "성소수자(LGBTI)의 이익에 부합하며 그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탈퇴를 시사했다.
인권운동가들은 이익단체의 로비가 여성을 보호하는 정책을 없애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한 여성 인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페리데 에랄프는 "(이스탄불 협약에 반대하는 이들은) 여성을 마음껏 폭행하고 노예로 부리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성소수자 담론을 꺼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고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도 이스탄불 협약이 여성을 폭력과 편견으로부터 지켜주고 살해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부터 해방해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터키 일간 사바흐의 편집장인 메리엠 일라이다 아틀라스는 "이스탄불 협약에서 탈퇴하길 원하는 사람들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들이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서 "그들의 요구사항을 해결하려면 일부 조항을 고치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아틀라스는 "특히 여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약에서 '터키의 가족관을 파괴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터키는 2009년 아내를 학대하고 장모를 살해한 전남편을 방치했다는 유럽인권재판소(ECHR)의 판결이 나온 후 국제사회에서도 논란이 됐다.
한편 이스탄불 협약은 폴란드와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등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폴란드도 최근 이스탄불 협약 탈퇴 계획을 밝혔으며 슬로바키아는 이스탄불 협약 비준을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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