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영상 촬영 중 신부 혼비백산
분만실에서 충격파 접한 임신부
인터뷰 중 의자에서 넘어진 기자
신생아 3명 끌어안아 보호한 간호사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기자 =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는 29살의 여성 이스라 세블라니는 지난 4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한 광장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카메라가 그의 웃는 얼굴에 초점을 맞춘 순간, 굉음과 함께 근처 건물 유리창이 부서지고 사방에 연기가 날렸다.
인근 항구에서 일어난 폭발로 아수라장이 된 촬영 현장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영국 일간 가디언, BBC방송 등 외신은 베이루트 폭발 참사 당시 사진이나 영상에 생생하게 포착된 현지인들의 사연을 5일 소개했다.
참사 당일은 세블라니의 결혼일이었다. 결혼식 영상을 찍던 도중 폭발이 일어났다.
그는 가디언에 "결혼식 준비를 2주 동안 했다"며 "다른 모든 여성처럼 '내가 결혼한다'는 생각에 기뻤다"고 말했다.
이어 "폭발이 일어났을 때 상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내가 여기서 죽는 건가, 어떻게 죽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세블라니의 남편인 아마드 수베이는 "우리는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며 "그런 폭음은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3주 전 결혼식을 위해 베이루트로 왔다는 세블라니는 이번 일을 계기로 레바논에서 살 수 없다고 마음을 굳혔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폭발 당시 병원 분만실에서 출산을 앞둔 임신부의 모습이 영상에 담기기도 했다.
베이루트 시내 세인트조지 병원에선 출산 직전의 임신부 엠마누엘 네이서가 분만실로 이송되자마자 폭발이 일어났다.
당시 남편 에드먼드가 촬영한 영상을 보면 폭발 충격으로 병실 유리창이 박살 난다.
BBC는 폭발이 일어나고 약 1시간 30분 후에 엠마누엘은 아들 조지를 무사히 출산했으며, 현재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한 상태라고 전했다.
에드먼드는 "아내와 의료진이 분만실로 들어가고 20초 후 폭발이 일어났다"며 "유리조각과 의료도구들이 사방에 휘날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밖에 참사 당시 인터뷰를 진행하던 BBC 기자의 모습도 영상에 기록됐다.
BBC 베이루트 지부의 메리엠 타오미 기자는 모로코의 민간 재생에너지 업체인 마센(MASEN)의 프로젝트 담당자를 화상으로 인터뷰하던 중 폭발 충격으로 자리에서 넘어졌다.
타오미 기자를 찍던 카메라도 바닥에 떨어졌다. 화면에는 유리 파편이 떨어지는 모습이 잡혔다. 그는 다치지는 않았다고 BBC는 전했다.
혼란 속에서도 신생아 3명을 품에 안고 침착하게 전화를 하는 간호사의 모습도 사진에 담겼다.
현지 사진 기자인 빌랄 야위치는 폭발이 일어난 후 곧장 알 룸 병원으로 가서 이 간호사를 발견해 촬영했다고 미 CNN방송에 전했다.
그는 "간호사의 침착함이 눈에 들어왔다"며 "주변 분위기와 대조됐다"고 말했다. 간호사 근처에는 부상자들과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 간호사는 폭발 당시 기절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가 아이 3명을 안고 있었다고 이후 말해줬다고 야위치는 덧붙였다.
yo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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