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협력업체 근로자들, 취업비자 아닌 ESTA 이용하다 적발
"미 당국, 일자리 문제로 인식…ESTA 제도 자체로 불똥 튈 수도"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정윤섭 특파원 = 한국 근로자들이 미국 현지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 협력업체에서 일하기 위해 미국에 입국하려다 강제로 추방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협력업체들이 정식 취업비자를 발급받지 않고 비자면제프로그램(VWP)인 전자여행허가제(ESTA)를 이용해 직원들을 파견하려다 미국 당국에 잇따라 적발된 것이다.
8일(현지시간) 미국 애틀랜타 주재 총영사관과 현지 한인사회에 따르면 이달 초 현대자동차 앨라배마 공장의 협력업체 직원들과 다른 한국 업체의 협력사 근로자들이 애틀랜타 하츠필드 잭슨 공항에서 무더기로 입국을 거부당했다.
한국인 근로자들이 ESTA를 악용해 불법 취업을 하려 했다는 사유로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이 입국을 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애틀랜타 총영사관은 연합뉴스에 "미국에 진출한 한국 여러 기업의 협력업체 직원들이 최근 입국을 거부당했다"고 확인했다.
입국이 거부된 숫자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상당수 근로자가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갔다고 이 소식에 정통한 한인 관계자는 전했다.
한국인 근로자의 꼼수 파견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말에도 한국인 근로자 33명이 ESTA를 이용해 입국하려다 애틀랜타 공항에서 추방됐다.
이들은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배터리아메리카(SKBA)의 조지아주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 위해 입국을 시도했으며, 미국 현지 2·3차 협력업체가 한국인 근로자들을 불법으로 파견받으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지 한인사회에 따르면 조지아주 인근 한국 대기업의 협력업체들은 모자란 일손을 보충하기 위해 계속해서 불법 고용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실업 급여를 받게 된 미국 근로자들이 공장에 출근하지 않자, 협력업체들이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급한 대로 한국에서 근로자들을 파견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애틀랜타의 한 한인은 "ESTA로 입국하면 최대 90일 동안 체류가 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인 근로자들이 협력업체 공장 주변에 숙소를 잡아놓고 두세달 일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전했다.
한인사회에서는 대기업들이 협력업체의 불법 고용을 방조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지난 1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대기업이 하청업체에 종용해 하청업체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직원 등을 떠밀고 직원들은 무언의 압박에 못 이겨 (미국으로) 출국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현지 대기업들은 한국인 근로자 꼼수 파견은 자신들과 무관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앨라배마 공장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입국 거부 사태와 관련해 "협력업체들에 불법 취업을 강요한 일이 없다"고 반박했다.
SK이노베이션도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추방당한 일을 놓고 "SKBA에서 협력업체들에 강한 유감을 표하고 재발 방지를 당부했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한국 근로자 불법 파견에 따른 입국 거부 사태가 계속되면 자칫 한미 양국의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CBP는 지난 5월 말 보도자료를 내고 입국을 거부한 한국인 33명에 대해 "미국 시민의 일자리를 뺏으려는 치밀한 범죄시도"라며 강경한 어조로 비판한 바 있다.
애틀랜타 현지의 한인 변호사는 "CBP의 입장은 미국이 일자리 문제와 연관 지어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라며 "불법 취업 시도가 계속 이어지면 ESTA 제도 자체로 불똥이 튈 수 있다"고 우려했다.
jamin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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