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험대 선 레바논 '종파정치'…친이란 정파 헤즈볼라 위기

입력 2020-08-09 16:56  

또 시험대 선 레바논 '종파정치'…친이란 정파 헤즈볼라 위기
종파 권력안배원칙이 비효율성 초래…미국 등 서방은 레바논에 정치개혁 압박



(카이로=연합뉴스) 노재현 특파원 = 중동에서 민주적으로 평가받는 레바논 정치가 수도 베이루트의 폭발 참사를 계기로 다시 벼랑 끝에 섰다.
레바논 시위대 수천 명은 8일(현지시간) 베이루트 도심에서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급기야 하산 디아브 총리는 오는 10일 정부에 조기총선을 제안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위대는 미셸 아운 대통령의 사진을 불태우는 등 분노를 표출했고 정부의 비효율성과 정치적 분열을 규탄했다.
경제 위기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폭발 참사까지 악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화근을 정치 문제로 보는 것이다.
레바논 정치는 이슬람교 수니파 및 시아파, 마론파 기독교 등 18개 종파를 반영한 독특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명목상 대통령제(임기 6년의 단임제)이지만 총리가 실권을 쥐는 내각제에 가깝다.
종파 간 세력 균형을 위해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 출신이 각각 맡는 게 원칙이다.
레바논의 권력안배 원칙은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다.
1943년 레바논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때 제정된 국민협정에도 종파별 권력안배원칙이 있었다.
이후 1975년부터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의 내전을 겪은 뒤 1989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중재한 타이프협정으로 권력안배원칙이 다시 정립됐다.
헌법 개정으로 총리의 권한이 강화됐고 의회 구성을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동등하게 배분되도록 했다.
그러나 이런 정치체제는 일종의 '권력 나눠먹기'로 극심한 종파 갈등과 정치권의 무능함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015년 베이루트에서는 쌓이는 쓰레기를 처리하지 못하는 정부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2018년 5월에는 의회 총선거가 무려 9년 만에 실시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동맹이 승리했지만, 새 내각은 정파 간 이견으로 거의 9개월 만인 작년 1월 말 꾸려졌다.
정치 혼란이 장기화하면서 경제 위기는 악화했고 그 고통은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지난해 10월 왓츠앱 등 메신저 프로그램의 세금 계획에 대한 반발로 반정부 시위가 수개월 이어졌을 때도 종파정치를 타파하고 전문가들을 중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그리고 올해 1월 컴퓨터공학 교수 출신인 하산 디아브 총리가 이끄는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종파 및 정파 간 갈등은 해소되지 못했다.
아울러 레바논 정치권에서 영향력이 큰 정치 세력인 헤즈볼라도 위기에 놓인 것으로 분석된다.
8일 베이루트 시위에서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초상화에 올가미를 거는 퍼포먼스는 헤즈볼라의 인기 하락을 보여준다.
이슬람 시아파 정파인 헤즈볼라 동맹은 2018년 5월 총선에서 의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승리했다.
하지만 경제 위기와 정쟁 등으로 헤즈볼라에 대한 여론이 악화했고 조기총선이 치러질 경우 2년여 전과 같은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헤즈볼라는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계기로 창설됐으며 이스라엘군과 대등하게 교전하면서 국민의 박수를 받았다.
헤즈볼라는 현재 강력한 군사조직을 보유하고 있고 이슬람 시아파 맹주 이란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국, 유럽연합(EU), 이스라엘 등은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헤즈볼라는 베이루트 폭발 참사와 관련성을 부인했지만 레바논 내 헤즈볼라에 대한 여론이 악화할 수 있다.
또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헤즈볼라의 지지를 받는 레바논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레바논 주재 미국대사관은 8일 트위터에서 "우리는 레바논 국민이 평화 시위를 할 권리를 지지하며 모든 관련자가 폭력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레바논 국민은 너무 많이 고통받아왔다"며 "이들은 투명성과 책임성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 방향을 바꾸는 지도자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noj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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