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부 하청받아 생산했더니 인수 보류…생산 늘자 가격 급락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기 인도네시아 정부가 한국과 방호복을 공동 생산하겠다고 나서 '협력 사례'로 주목받았지만, 생산품 인수와 정산에 차질이 빚어졌다.
인도네시아 보건부가 6월부터 방역복 인수를 미루면서 중계업체·브로커가 한인 봉제업체들에 발주한 방호복 수 백만장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11일 재인도네시아 봉제업계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3월 2일 첫 확진자 발생 후 코로나19 진단키트 부족은 물론이고, 방호복이 없어 의료진이 비옷을 입고 환자를 치료했다.
3월 당시 자카르타 외곽 한인 봉제업체 6곳은 한국에서 들여온 원단으로 한국 질병관리본부에 납품할 방호복을 생산하고 있었다.
해당 소식을 접한 인도네시아 정부는 방호복 수출을 금지했다며 한국 원단으로 생산한 방호복 일부를 인도네시아에 납품해주면 나머지를 한국에 가져가도록 허용하겠다고 조건을 걸었다.
이에 한국대사관 등이 나서 양국 협력이 이뤄졌고, 한인 봉제업체들은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며 적극적으로 생산에 나섰다.
한인 봉제업체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로 다른 주문이 모두 끊긴 상태였기에 방호복 생산이 매력적인 사업으로 인식됐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보건부는 방호복 수 백만장씩을 발주했고, 현지 중계업체·브로커가 한인 봉제업체들에 물량을 발주했다.
일부는 하청 계약서를 작성하고, 선금도 받았지만 일부는 계약서 없이 제품을 생산했다.
한인 업체들뿐만 아니라 중국 업체 등 후발 주자들이 계속해서 뛰어들어 방호복 물량이 쏟아졌고, 전 세계적으로 재료비가 하락하면서 방호복 가격이 급락했다.
코로나 사태 초기 방역복은 최고 장당 9만원까지 거래가 이뤄졌다.
이는 한인 공장의 납품가에 중계업체들이 몇 배를 붙여 판 것이고, 최근 후발 주자들이 원단을 선박으로 들여와 생산한 제품은 1만원 안팎까지 떨어졌다.
이에 보건부가 '가격 조정' 등을 내세워 6월부터 방호복 인수를 중단하자 박스째 방호복을 쌓아둔 업체들은 답답한 상황이다.
가령, 보건부의 보호장비 구매 담당자가 방호복 500만장을 3월 28일 현지 중계업체(PPM)에 발주했고, 한인 업체 30곳이 참여한 컨소시엄(Koresel)이 PPM과 계약해 5월 말까지 전량 생산을 마쳤다.
보건부는 300만장을 5월 말 먼저 납품받고 값을 치렀으나, 그 뒤로 방호복 매입을 중단한 상태다.
보건부는 인도네시아 중계업체의 리베이트 관행을 문제 삼아 한인 업체들을 대상으로 반부패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를 두고 한인 업체들은 "중계업체에 납품한 가격에는 문제가 없다. 국제 시세에 맞췄다"며 "코로나 사태 초기 어려울 때 최선을 다해 도왔는데, 싼 제품이 나오니 비싼 재료로 만든 제품들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동근 한인 컨소시엄(Koresel) 대표는 전날 노동부 차관을 만나 "30개 한인 업체에 속한 인도네시아인 근로자가 약 5만명"이라며 "방역복 200만장이 상자째 쌓여 있어서 월급도 제대로 못 주고, 부도 직전까지 간 업체들도 여러 곳"이라고 호소했다.
한인 컨소시엄에 참여하지 않은 한인 봉제업체 여러 곳도 중계업체·브로커와 손잡고 방호복 수백 만장을 생산했다가 그대로 공장에 쌓아두고 있다.
한인 봉제업체 관계자는 "한인 업체에 쌓여있는 방호복만 다 합쳐도 1천만장은 된다고 한다"며 "코로나 사태 초기에는 방호복이 없어서 난리더니, 지금은 쌓여있어 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한인 사회 내부에서는 "초기 가격 부풀리기가 심해 인도네시아 정부가 뿔났다", "돈이 된다고 보고 무분별하게 생산부터 한 게 잘못"이라는 지적과 "코로나 예산집행을 안 하고 버티는 보건부가 가장 문제"라는 지적이 분분하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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