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떼 형성 페로몬 규명…유전자 조작·유인 박멸 등 가능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메뚜기가 떼를 지어 몰려다니게 만드는 페로몬 분자의 정체가 밝혀져 메뚜기떼로 인한 농작물 초토화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과학 저널 '네이처'와 외신 등에 따르면 중국사회과학원 캉러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메뚜기가 서로 떨어져 생활하다 '4-바이닐아니솔'(4VA) 페로몬이 분비되면서 떼를 짓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메뚜기는 독자 생활을 할 때는 피해가 크지 않지만, 변태가 이뤄져 색깔이 바뀌고 수백만마리가 모여들어 떼를 짓게 되면 농작물을 닥치는대로 먹어치우는 재앙적 결과를 가져온다.
연구팀은 메뚜기가 주변에서 다른 메뚜기를 발견하면 4VA를 발산하기 시작해 메뚜기가 모여들수록 더 강해지고 훨씬 더 많은 메뚜기를 불러 모으는 순환 과정에 들어가는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메뚜기떼 페로몬 감지 수용체가 없는 메뚜기를 만들어 풀어놓거나, 이 페로몬을 이용해 메뚜기를 한 곳으로 모여들게 해 박멸하는 방식 등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팀은 떼를 지어 이동하는 풀무치(Locusta migratoria)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4VA를 찾아냈다.
연구팀은 실험실 안에서 메뚜기 네 마리가 모이자 4VA 페로몬을 분비하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했다.
또 'Or35' 유전자가 이 페로몬을 감지하는데 관여하는 것을 밝혀내고 유전자 조작으로 Or35가 부족한 메뚜기를 만들어냈는데, 야생 메뚜기와 비교해 4VA에 대한 매력을 잃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4VA를 화학적으로 합성해 실험실과 야생에서 덫(trap)을 만들어 실험한 결과 메뚜기를 끌어모으는 효과가 있는 것도 확인했다.
캉 교수는 AFP통신과의 회견에서 "실험 결과를 현실에 적용하려면 아직 최적화와 조정이 필요하다"면서 덫은 "상당히 효율적이었으며" 이번 연구 결과를 비교적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메뚜기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방법이 "지속 가능하고 친환경적인 통제법일 수 있다"면서 이는 장기적이고 대규모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시행되기 전에 철저한 생물학적 보안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논문의 '동료평가'에 참여한 록펠러대학 신경유전행동연구소의 레슬리 보셸 소장은 논평을 통해 4VA 수용체를 차단하는 화학물질을 발견하면 "메뚜기떼에 대한 해독제가 돼 메뚜기들이 평화로운 독자 생활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셸 박사는 4VA가 메뚜기떼를 형성하는 유일한 물질인지 풀무치 이외에 다른 종의 메뚜기도 같은 반응을 보이는지 등에 대해서는 추가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메뚜기떼는 수십억마리가 모여들어 수백㎢에 걸친 농작물에 큰 피해를 줘 근근이 살아가는 빈농을 위협하고 식량안보까지 저해하는 존재가 돼있다.
올해는 특히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 집중호우가 이집트땅메뚜기(Schistocerca gregaria)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메뚜기떼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농약을 공중에 살포하는 방법 이외에는 메뚜기떼에 대처할 수 있는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이마저도 메뚜기떼가 빠르게 이동하고 방향을 예측할 수 없어 어려움을 겪는 데다 익충까지 피해를 봐 다른 대안이 모색돼 왔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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