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한국행 막히자 현지 젊은이들 인기 장소로 급부상
한국 식당마다 문전성시…"'별그대' 시기 넘는 최고 호황"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토요일이던 지난 15일 저녁, 중국 상하이(上海) 한인타운으로 들어서는 훙취안루(虹泉路) 초입부터 차들이 막혀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한인타운 상가들로 향하는 차들이 왕복 2차선 도로에 몰려들면서 극심한 정체 현상이 빚어진 탓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기다리다 지쳤는지 40도 가까이 치솟은 찜통더위 속에도 차에서 내려 한인타운 중심의 상가 밀집 지역으로 걸어가기도 했다.
장경범 상하이한식발전협의회 회장은 "작년에는 이 일대의 길이 막힌 적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 찾아오는 사람이 급증해 훙취안루 입구에서부터 차로 수백m를 더 들어와 주차하는 데 한 시간 가까이 걸리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한인타운 한가운데 자리 잡은 쇼핑몰인 징팅톈디(井亭天地) 일대에 아무리 적게 잡아도 만명은 거뜬히 넘길 정도로 인파가 가득했다.
특히나 20대 3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이들의 비중이 높아 보였다.
징팅톈디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한국 음식점 문 앞마다 대기 고객들이 많게는 십여명씩 줄을 지어 앉아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는 일이 예사였다.
한 고기구이 집에서 만난 젊은 중국인 고객은 "두시간 반을 기다려서 들어왔다"며 "가성비가 좋은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 해외여행 '갈증' 중국 젊은이들 한인타운서 '이국 체험'
상하이 훙취안루 일대에 형성된 한인타운이 상하이 '인싸'(insider·인기인이라는 인터넷 조어)들의 인기 장소로 급부상하면서 음식점과 상점 등을 운영하는 한인 상인들은 모처럼 호황을 맞이했다.
17일 교민사회에 따르면 중국에서 코로나19 확산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저지되고 경제가 정상화되는 가운데 유독 상하이 한인타운의 경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한인타운이 아닌 상하이 도심 지역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장 회장은 "상하이 전체적으로 경기가 많이 회복됐지만 코로나19 전 수준까지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한인타운 지역의 호황은 매우 특이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인타운에는 예년보다 많게는 서너배에 가까운 현지인들이 몰려와 한국 음식을 맛보는 등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있다.
징팅톈디에서 한국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승웅씨는 "작년 동기와 비교하면 배 가까이 손님이 늘었다"며 "원래 우리 가게는 한국 손님 비중도 작지 않았는데 요즘엔 중국 손님의 비중이 거의 90% 정도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만큼 현지 중국인들의 발걸음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상하이 한인타운의 호황은 코로나19로 중국인들이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현상과 관계가 깊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등 해외 여러 곳을 자유롭게 여행하던 상하이의 젊은이들이 한국어 간판으로 뒤덮인 '이국적' 공간인 한인타운에서 '여행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하이에서 특정 국가의 밀집 상업 구역이 있는 곳은 한인타운이 거의 유일하다.
상하이 내 상주인구로만 보면 일본인이 더 많기는 하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이나 상업 시설은 특정 상가에 모여 있지 않고 비교적 넓은 지역에 산재해있어 '일본 타운'이라는 개념은 희박한 편이다.
2005년 무렵부터 형성된 훙취안루 일대 한인타운에 상주하는 한국인은 약 1만5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많을 때 1만명가량의 유학생을 포함해 상하이 전체 교민 3만5천명에 이르던 한국 교민 중 절반 가까이가 훙취안루 일대에 모여 사는 것이다.
장 회장은 "몰려드는 현지 고객으로 보면 한인타운 형성 이래 최고 호황기로 보면 된다"며 "2013∼2014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이후 한인타운 호황기를 능가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 세련된 '인증샷' 소재 된 소주잔…한한령에도 한류 영향 여전
대중문화 분야에서 한한령(限韓令)이 여전함에도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 드라마 등 대중문화가 꾸준히 사랑받으며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속의 포장마차 같은 한국의 일상 문화가 '트렌디하다'고 여겨지는 현상도 한인타운의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
한국어가 유창한 쑨(孫)씨는 한국 드라마의 열혈 팬이다.
여전한 한한령 탓에 중국판 넷플릭스 격인 아이치이(愛奇藝) 등에는 최신 드라마가 올라오지 않는데 어떻게 최신 드라마를 보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 다 봐요. 나오자마자 하루도 안 돼 '자원봉사자'들이 자막까지 달아주는 데 이 사람들의 '열정'에 나도 놀랄 때가 있어요."
시나닷컴 웨이보(微博) 등 중국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한인타운의 여러 한국 음식점에 '진로'나 '참이슬' 글씨가 박힌 소주잔을 들고 찍은 '인증샷' 사진을 올린 이들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어묵, 핫도그, 바나나우유, 폴라포, 봉봉, 쌕쌕 같은 한국의 먹거리나 음료수, 아이스크림도 인터넷에서는 '과시'의 소재가 된다.
2017년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한중 관계의 급랭 사태, 올해 코로나19 사태 등 예기치 못한 대형 충격파를 잇따라 겪으며 어렵게 중국에서 사업을 벌이던 한국 상인들은 모처럼 그간의 여러 어려움을 잠시 잊고 미소를 짓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이 가장 심각했던 1∼3월에는 거의 영업을 하지 못해 막대한 손해를 입으면서 많은 이들이 폐업 직전의 상황에 몰렸는데 극적으로 회생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박상윤 상하이 한국상회 회장은 "최근에 한국 식당 사장님들을 뵈면 모처럼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 저 역시 기쁠 따름"이라며 "한국 문화가 사랑받는 좋은 분위기를 지속해서 끌고 갈 수 있도록 한국 문화 행사를 꾸준히 여는 등 한국 상인들이 힘을 모아나가겠다"고 말했다.
한국 상인들이 우리 문화를 알리는 축제인 한펑제(韓風節)를 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15일 개막해 내달 13일까지 이어지는 축제 기간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한 한국 전통복식 퍼레이드, 사물놀이, 메이크업 시연 등 다양한 문화 공연이 마련됐다.
행사를 주최하는 한국상회는 축제 기간 유입 관람객이 일일 1만명, 총 3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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