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국민투표 후 국민이 원하면 새 대선과 총선 치를 수 있어"
"그 전 재선거는 죽어도 없을 것"…야권 대선후보 "국가 지도자 될 준비돼"
(모스크바·이스탄불=연합뉴스) 유철종 김승욱 특파원 =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일주일 이상 계속되는 야권의 대선 불복 시위에 밀려 대선 재실시와 대통령 권력 분점에 동의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벨라루스 국영 벨타 통신 등에 따르면 루카셴코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간 수도 민스크의 민스크바퀴견인차량(MZKT) 공장을 방문해 근로자들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권력을 공유할 용의가 있고, 이를 위해 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면서도 "시위대의 압력에 밀려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권력 재분배를 위한 헌법 개정 가능성을 검토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우리는 이미 선거를 치렀다"며 "내가 죽기 전까지는 야당이 원하는 새 대통령 선거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국민투표를 통한 개헌 후 새로운 헌법에 따른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고 헌법적 권한을 넘겨주겠다"며 "국민투표 후 새 헌법에 따라 국민이 원한다면 총선과 대선, 지방선거를 치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시에 "여러분은 불공정한 선거를 얘기하면서 공정한 선거를 원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답하겠다"면서 "우리는 선거를 치렀다. 여러분이 나를 죽이기 전에는 재선거는 없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벨라루스는 지난 1994년 대통령과 의회가 권력을 나눠갖는 헌법을 마련했으나, 1996년 루카셴코 대통령 주도로 실시한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력을 몰아주는 순수대통령제를 채택했다.
이날 루카셴코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 국민투표는 대통령의 권한을 의회에 나눠주는 개헌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동시에 이 같은 개헌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대통령직에서 스스로 물러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9일 치러진 대선 결과에 불복해 파업에 들어간 MZKT 노동자들은 이같은 루카셴코 대통령의 연설에 야유를 보냈고, 루카셴코 대통령은 서둘러 연설을 마무리해야 했다.
반면, 이번 대선에서 루카셴코와 대결한 야권 후보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 진영은 이날 전체 근로자들에게 루카셴코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벌일 것을 호소했다.
리투아니아에 머물고 있는 티하놉스카야는 앞서 이날 새로운 동영상 성명을 통해 "국가 지도자가 돼 새로운 대선 실시 여건을 마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정치인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운명은 나에게 독단적인 통치와 불의에 대항하는 전선에 서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국가 지도자로서 행동하고 책임을 떠맡을 준비가 됐다"고 덧붙였다.
티하놉스카야는 대선 출마를 준비하다 당국에 체포된 유명 반체제 블로거 세르게이 티하놉스키의 부인이다.
티하놉스키는 사회질서 교란 혐의로 지난 5월 말 체포돼 수감됐으며, 티하놉스카야는 남편을 대신해 출사표를 던졌다.
벨라루스의 대선 불복 시위는 지난 9일 선거에서 1994년부터 철권통치로 장기집권을 지속해오고 있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80% 이상의 압도적 득표율로 6기 집권에 성공했다는 개표 결과가 알려진 뒤부터 날마다 계속되고 있다.
지난 13일부터는 여러 대형 기업들에서도 근로자들이 부정 선거에 항의하며 저항 집회를 열거나 파업에 돌입했다.
앞서 민스크자동차공장, 민스크트랙터공장 등이 파업에 들어간 데 이어 이날 민스크 인근 도시 솔리고르스크에 있는 세계적 규모의 칼륨비료공장인 '벨라루시칼리' 노동자들도 무기한 파업을 선언했다.
동남부 고멜주에 있는 '벨라루스철강공장' 노동자들도 이날부터 업무를 중단하고 파업에 가세했다.
전날에는 야권 지지자 20만명 이상이 수도 민스크 시내 북쪽 승리자 대로에 있는 '영웅도시' 오벨리스크 앞에 모여 루카셴코 퇴진 시위를 벌였으며, 이는 1994년 루카셴코 대통령 집권 이후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kind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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