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8분 연설→올해 5분 미만…NYT "눈 깜박하는 사이에 놓칠지도"
중도 성향에 성스캔들 많았던 클린턴, 민주당 좌클릭·미투시대로 위상 급락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대선후보 공식 선출을 위한 올해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유독 초라해진 남자가 있다.
두 차례나 대통령을 지낸 빌 클린턴이다.
4년마다 주어진 시간을 초과한 장광설로 '악명' 높으면서도 당대 대선후보 이상의 인기를 과시하던 그에게 18일(현지시간) 전당대회 2일차 행사에서 주어진 연설시간은 5분 미만에 불과하다. 연설이 나가는 시간대도 시청률이 높은 소위 프라임타임 한참 전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재선 출정식이었던 지난 2012년 전당대회에서 48분만에 걸친 연설로 '현직 대통령의 쇼를 훔쳤다'는 평가를 받던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번에는 뒷전으로 밀려난 셈이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NYT)는 "36년만에 처음으로 클린턴 전 대통령이 구경꾼으로 전락한 민주당 전당대회"라고 보도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88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마이클 두카키스 당시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긴 연설로 주목을 받은 이래 한 번도 전당대회 들러리 역할에 그친 적이 없었다.
NYT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번 연설을 가리켜 "나중에 생각나서 덧붙인 순서나 마찬가지", "눈 깜박하는 사이에 놓칠 수 있는 순간"이라는 등의 수식어로 세월이 무상함을 묘사하기도 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아내인 힐러리 클린턴 당시 대선후보의 곁을 지키던 그의 역할이 급격히 축소된 것은 세대 차이가 아니라 이념 차이 때문이라고 신문은 분석했다.
올해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보다 여전히 3살 젊은 클린턴 전 대통령은 현직 시절 '제3의 길'이라는 기치 아래 무역, 복지, 범죄 등의 여러 현안에서 당을 중도로 이끌었던 인물이다. 이후로 꾸준히 좌클릭한 현 민주당의 노선과는 어울리지 않는 셈이다.
실제로 최근 CBS뉴스 여론조사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연설에 찬성한 민주당 지지자는 56%로, 진보 진영의 젊은 기수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의 연설에 찬성한 응답자(63%)보다 적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백악관 참모를 지낸 더글러스 소스닉은 NYT에 "세상이 달라졌고 민주당도 마찬가지"라면서 "거의 30년 전 빌 클린턴을 대선후보로 선택했던 그때의 민주당과 같은 당은 더이상 없다"고 말했다.
특히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강타한 현시점에서 과거 각종 성 스캔들을 일으켰던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재평가를 받게 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1998년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르윈스키 스캔들'과 관련해 거짓말한 사실을 알게 되자 "코에다가 주먹을 날리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 하나의 배경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다.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원격으로 열리는 올해 전당대회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사전 녹화 연설을 하다보니 애드립을 길게 이어갈 수 없게 됐다.
물론 아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그와 달리 19일 라이브 연설을 하고, 미셸 오바마 전 영부인이 전날 18분이나 연설했다는 점과 비교하면 클린턴 전 대통령의 위상이 그만큼 내려갔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firstcir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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