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먹방] 신품종 포도로 빚은 '강원도의 맛'

입력 2020-09-25 07:30  

[酒먹방] 신품종 포도로 빚은 '강원도의 맛'
홍천 샤또 나드리의 너브내 와인

(홍천=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국내에서 개발된 신품종 포도로 만든 국산 와인들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샤또 나드리'는 신품종 포도로 가장 활발하게 와인을 제조하는 와이너리 중 한 곳이다.
오직 강원도에서만 재배되는 포도로 빚어 강원도의 '테루아'(Terroir.토양과 기후 등 와인이 만들어지는 자연환경)를 물씬 느낄 수 있다.



◇ 신품종 포도, 한국 와인에 날개를 달다
한국 와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다. 정부 주도하에 기업 중심의 와인 산업이 시작돼 1974년 해태주조에서 노블와인을, 1977년 두산에서 마주앙을 선보였다.
20여년간 전성기를 누렸던 한국 와인은 그러나 1987년 수입자유화 조치 이후 쏟아져 들어온 외국 와인에 밀려 급격하게 쇠퇴했다. 기업들이 '제조'보다 더 수익이 좋은 '수입'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취를 감추다시피 한 한국 와인이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다.
과거처럼 대기업이 아니라 직접 재배한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농가형 와이너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특급 호텔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에도 오를 정도로 맛과 품질을 인정받는 와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외국 와인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 와인의 품질과 위상이 이렇게 높아진 데에는 와인 제조에 적합한 신품종 포도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큰 몫을 했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청포도 '청수'는 전국 각지의 와이너리에서 재배되면서 한국 화이트 와인을 대표하는 품종으로 자리 잡았다.



◇ 강원도 '테루아'가 물씬
강원도에서도 신품종 포도로 와인을 제조하는 실험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홍천에서 와이너리 '샤또 나드리'를 운영하는 임광수·이병금 씨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샤또 나드리는 강원도농업기술원이 개발한 다양한 품종의 포도로 7종의 와인을 만들고 있다.
이 가운데 화이트 와인과 스파클링 와인은 특급 호텔로 납품될 정도로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와인 브랜드명은 '너브내'. 넓은 내를 뜻하는 홍천(洪川)의 순우리말이자 옛 이름이다.



'너브내 화이트'와 '너브내 스파클링'의 주재료는 '청향'이다. 청포도인 청향은 강원도의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견뎌낼 수 있도록 개발된 품종이다.
국내에서 널리 재배되는 다른 포도 품종과 달리 영하 20도의 추위도 거뜬히 견뎌낸다고 한다.
포도알은 작은 편이며, 씨가 없고 머스캣 향이 강하다.
원래 식용으로 개발된 것이라 그냥 먹어도 새콤달콤 맛있다. 1㎏에 1만원 하는 비싼 포도로, 생산량이 많지 않아 홍천 이외의 지역에서는 맛보기 힘들다.
화이트 와인에는 '청향'에 홍색 포도인 '레드드림' 계열의 포도가 약간 더해진다. 레드드림 역시 강원도농업기술원이 개발한 것이다.
청향은 향이 강한 장점이 있지만 보디감이 떨어지는데 레드드림이 이런 약점을 보완한다고 한다.
이렇게 청향과 레드드림을 섞은 포도즙에 오크칩을 넣어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1년 이상 숙성시키면 화이트 와인이 완성된다.
시음장에서 맛본 '너브내 화이트'는 빛깔부터 매력적이었다. 붉은 포도가 들어가서인지 일반적인 화이트 와인과 달리 연한 살굿빛이 돈다.
잔을 코에 갖다 대니 복숭아와 바나나 등 달콤한 과일 향기가 피어오른다.
한 모금 입에 넣으니 과하지 않은 산미와 함께 부드러운 오크 터치가 느껴진다. 상큼하면서도 가볍지 않고, 스파이시하면서도 부드럽다.



'너브내 스파클링'은 화이트 와인의 성공을 바탕으로 임 대표가 2018년 야심 차게 내놓은 품목이다.
청향과 레드드림으로 빚은 화이트 와인을 거대한 압력 탱크에 넣어 2차 발효시키면 기포가 톡톡 튀는 스파클링 와인이 완성된다.
2017년 이탈리아를 직접 방문해 압력 탱크를 들여온 임 대표는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이듬해 첫 스파클링 와인을 선보일 수 있었다.
인공적으로 탄산을 주입하지 않고 압력 탱크에서 추가 발효를 거치는 방식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는 것은 국내 최초라고 한다.
레드 와인에는 검은색 포도인 블랙선과 블랙아이가 주재료로 들어간다.
강원도에 산재하는 토종 머루를 외국산 포도와 교배해 레드와인 양조용으로 개발한 품종들이다.
블랙선은 토종 머루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단맛과 신맛, 쓴맛 등 여러 맛이 혼재돼 있어 와인을 담그면 복합적인 맛을 낸다.
블랙아이는 씨에서 고추냉이 향이 느껴진다.
레드 와인은 화이트 와인과 마찬가지로 포도즙에 오크칩을 넣어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숙성시킨다.
타닌이 과하지 않으면서 맛과 향이 조화로워 한국 음식과 잘 어울린다.
임 대표는 "외국의 양조용 품종은 우리나라의 토양과 기후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설령 들여와 그것으로 와인을 빚는다고 해도 수천 년 넘게 축적된 그들의 노하우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했다.
우리 풍토에 맞게 개발된 신품종으로 개성이 뚜렷한 와인을 만들겠다는 것이 임 대표의 포부다.



◇ 귀농 농부에서 와인 메이커로
부천에서 축산유통업을 했던 임 대표가 강원도 홍천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98년이다.
10년간 품고 지냈던 귀농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과감하게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홍천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와이너리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펜션을 운영하면서 포도와 배 농사를 했다.
와인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귀농 후 10년 가까이 지나서였다.
2007년 농업진흥청에서 진행된 와인 양조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2009년 주조 면허를 따고 본격적으로 와인 만들기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와이너리 건물 없이 15평 남짓한 집 지하실에서 술을 빚었다.
2010년 '너브내'라는 이름으로 레드 와인을 처음 출시했고, 2012년 화이트 와인을 선보였다.
판매는 펜션에 놀러 온 손님이나 지인들을 통해 알음알음 이뤄졌다.
그렇게 취미처럼 시작한 와인 양조는 10년이 지나면서 연간 생산량 1만병 규모로 커졌다.
2016년에는 지하 제조공간을 넓히고 카페 형태의 시음장도 새로 마련해 어엿한 와이너리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와이너리 건물 앞에는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와이너리 방문객을 위해 너브내 와인의 재료가 되는 다양한 품종의 포도들을 심어놓은 공간이다.
와이너리에서는 와인 시음과 함께 뱅쇼 만들기, 샹그리아 만들기, 핑거 푸드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단체 방문객이 사전 예약하면 포도밭 옆 잔디에서 와인을 곁들인 7가지 코스 요리를 맛보는 와인 다이닝 체험도 할 수 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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