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야권, 2주 넘게 대선 불복 시위…루카셴코 퇴진 요구(종합2보)

입력 2020-08-24 04:25   수정 2020-08-24 17:54

벨라루스 야권, 2주 넘게 대선 불복 시위…루카셴코 퇴진 요구(종합2보)
민스크 시내에 수만명 집결…대통령 관저까지 접근해 경호부대와 대치
방탄복 입고 자동소총 든채 관저 도착한 루카셴코 "시위대는 쥐새끼"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옛 소련에서 독립한 동유럽 소국 벨라루스에서 장기 집권 중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대선 압승 결과에 불복하는 야권의 저항 시위가 23일(현지시간)에도 이어졌다.
시위와 근로자들의 동조 파업은 지난 9일 대선 이후 2주 넘게 계속되고 있다.
시위대는 이날 루카셴코 대통령의 관저까지 접근해 그의 퇴진을 요구했고, 루카셴코는 시위대가 물러간 뒤 헬기를 타고 관저에 도착한 뒤 손에 소총을 들고 내리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됐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수도 민스크 시내 중심의 독립광장에는 수만 명의 시민이 모여 부정 선거 무효화와 루카셴코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시내 독립대로를 따라 행진한 뒤 독립광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몸에 벨라루스의 독립을 상징하는 백색-적색-백색의 3색기를 두르거나 손에 꽃을 들고 행진했다.
시위 현장 주변에 배치된 경찰은 확성기로 해산을 종용했지만 진압에 나서지는 않았다.
참가자들은 독립광장 집회에 이어 시내 북쪽 승리자 대로에 있는 '영웅도시' 오벨리스크로 이동해 시위를 계속했다.
시위대는 오벨리스크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군인들에게 '군대는 민중과 함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일부 시위대는 뒤이어 오벨리스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대통령 관저 앞까지 몰려가 관저를 지키고 있던 폭동진압부대 '오몬' 대원들과 대치했다.
시위대는 대원들이 친 방어벽 근처에서 '(루카셴코는)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그러나 오몬 대원들과 충돌을 일으키지는 않고 얼마 뒤 시내 중심가 쪽으로 되돌아갔다.
이후 국영통신 '벨타'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관저로 이동하는 헬기안에서 "대응이 뜨거울 것임을 알고 근처에 있던 시위대가 쥐새끼들처럼 흩어졌다"고 말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관저 근처에 모였던 시위대가 경호 부대의 총격 진압 등을 예상하고 도망갔다는 비아냥조의 발언이었다.
또다른 친정부계 텔레그램 채널은 루카셴코 대통령이 방탄복을 입고 손에 자동소총을 든 채 헬기에서 내려 관저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위대에 대한 무력 진압 의지를 과시하는 동영상이었다.
이날 민스크 외에도 남동부 도시 고멜과 서부도시 그로드노 등에서도 각각 수천 명씩이 참가한 야권 시위가 벌어졌다고 타스 통신은 전했다.
최근 대선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에 도전했다가 대선 후 신변 안전 문제로 리투아니아로 피신해 있는 여성 야권 후보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는 이날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야권이 권력을 잡더라도 벨라루스는 러시아와의 긴밀한 경제 관계를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는 우리의 이웃"이라면서 "누구도 (서방으로) 180도 선회하진 않을 것이다.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가 아니기 때문이다"라면서 러시아를 안심시켰다.
민스크의 독립광장에선 전날에도 약 3천명의 야권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였다.
벨라루스 경찰은 이날 전국 55개 거주 지역에서 6천700명이 시위에 참여했으며 시위 참가자 22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전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와 인접한 서부 국경도시 그로드노를 방문해 야권이 서방의 지원을 받아 정권 교체 혁명을 시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루카셴코는 모든 시위 주동자와 조종자들을 색출하라고 보안 기관에 지시하면서, 폴란드나 리투아니아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배후에서 시위를 기획하고 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로드노의 군부대를 방문해서는 서방 세력이 시위를 부추겼으며 서부 국경에 나토군이 배치됐다고 주장하면서, 국방부와 서부 지역 군부대에 그로드노를 중심으로 한 서부 지역 방위를 위해 모든 조처를 하라고 명령했다.
이어 야권이 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나토 군대를 벨라루스로 끌어들이려 시도하고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벨라루스는 망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친서방 성향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유로뉴스(Euronews)와의 인터뷰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이 재선거를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루카셴코가 최근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확신이 있으면 국제참관단을 초청해 재선거를 실시하는 것만이 벨라루스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벨라루스에선 1994년부터 철권통치로 장기집권을 지속해오고 있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80% 이상의 압도적 득표율로 6기 집권에 성공했다는 개표 결과가 알려진 뒤부터 야권과 시민들의 저항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상당수 대기업 노동자들도 파업과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야권은 야권 후보 티하놉스카야의 주창으로 조정위원회를 구성해 루카셴코 퇴진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루카셴코 대통령은 야권의 조정위원회 구성을 '정권 찬탈 시도'라고 비난하면서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cjyou@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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