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자민당 총재 선출, 공개 경쟁 아닌 파벌간 조정 중요
국회가 선출한 총리, 일왕 의례적 임명 절차 거쳐 공식 취임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일본이 7년 8개월에 걸친 최장기 집권 기록을 세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뒤를 이을 '포스트 아베'를 뽑는 절차에 본격 돌입한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따라 전날 출마 의향을 밝힌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조회장을 포함해 모두 3명이 차기 자민당 당권을 다투는 격돌을 벌이게 됐다.
자민당은 오는 8일 새 총재 선거를 고시하고 6일 후인 14일에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여기서 자민당 총재로 뽑히는 인물이 새 총리가 되어 '포스트 아베' 일본을 이끌게 된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파벌에 기반을 둔 정치행태가 뿌리 깊은 일본의 행정수반을 뽑는 과정이나 의미가 한국과 같은 대통령제 국가와는 다른 점이 적지 않다.
◇ 정권교체 아닌 당 수뇌 교체…총리는 다수당 총재가 맡아
일본은 이번에 행정 수반인 새 총리(내각총리대신)를 맞게 되지만 정권교체를 겪지 않는 것이 특징 중의 하나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의 총리는 유권자를 대표하는 하원 격인 중의원(衆議院)과 상원 격인 참의원(參議院)으로 구성된 국회에서 간접적인 방식으로 선출된다.
만약 양원(兩院)에서 뽑은 후보가 다를 경우에는 중의원이 선출한 사람이 총리를 하게 돼 있다.
현재 중의원은 전체 465석 중 자민당이 과반을 크게 웃도는 284석(무소속회 포함)을 차지하고 있다.
참의원은 자민당이 단독 과반 의석에 미달하지만 공명당 등 연립 정파 의석을 포함할 경우 역시 과반을 점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 의석 상황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새로 뽑히는 자민당 총재가 총리를 맡게 돼 있어 이번 총리 교체를 여야 간 권력 이동으로 인한 정권 교체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일본에선 1955년 보수정당인 자민당이 집권을 시작한 이후 반자민당 연립정권으로 1993년 8월 출범한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내각으로 38년 만에 첫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이후 1996년 11월 자민당 단독으로 다시 정권이 넘어갔다가 2009년 9월~2012년 12월 민주당 정권을 거쳐 공명당과 함께하는 지금의 자민당 정권이 다시 발족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옛 민주당 정권의 부활을 지향하는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을 중심으로 제2야당인 국민민주당과 무소속 의원이 참여하는 150석 규모의 통합야당이 곧 출범할 예정이다.
그러나 자민당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압도적인 상황이어서 조기 총선 등을 통해 앞으로 중의원을 새롭게 구성하더라도 정권교체를 이루기는 어려운 것이 일본이 마주하고 있는 정치현실이다.
국회가 선출하는 총리는 2차 세계대전 후 제정된 새 헌법을 통해 행정권을 모두 상실한 일왕의 의례적인 임명 절차를 거쳐 공식 취임하게 된다.
◇ 후보 공개 경쟁 아닌 파벌 간 조정이 중요
물러나는 아베 총리의 복심으로 불리며 7년 8개월을 최측근인 관방장관으로 일해온 스가 장관은 이날 공식적으로 출마 선언을 하기도 전에 사실상의 총리로 떠올랐다.
스가 장관이 여론조사에선 지지율이 가장 높은 이시바 전 간사장을 따돌릴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파벌 정치와 연관돼 있다.
자민당에는 현재 7개의 파벌(계파)이 존재한다.
명목상으로는 연구회나 공부하는 모임 등의 성격을 띠는 각 파벌에는 중·참의원 대부분이 소속돼 있고, 정치적 의사도 각 파벌의 수장 의견을 좇아 집단으로 밝히는 것이 전통이다.
총리를 사실상 결정하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스가가 당내 7개 파벌 중 5곳의 지지를 이미 얻어 국회의원이 행사하는 394표 가운데 70% 이상을 확보했다.
스가 지지 쪽에 선 파벌은 아베 총리가 속한 최다 계파인 호소다(細田)파(98명)를 비롯해 아베 총리의 정치적 맹우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이 이끄는 아소파(54명), 다케시타 와타루(竹下亘) 전 총무회장의 다케시타파(54명),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이 주도하는 니카이파(47명),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전 경제재생상의 이시하라파(11명) 등이다.
무파벌 의원 약 30명도 스가 장관을 지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기시다 정조회장과 이시바 전 간사장은 국회의원 표로 각각 본인이 이끄는 기시다파(47명)와 이시바파(19명) 소속 의원들과 지방당원 표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는 국회의원 표 394표 외에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 지부연합회 대표(각 3명)가 행사하는 141표를 더해 총 535표로 결정되도록 정리됐다.
원칙으로는 당 대회를 열어 소속 국회의원과 전국의 당원이 동수(현재 각각 394명)의 표를 행사하는 방식으로 총재를 뽑도록 하고 있다.
다만 긴급한 경우 선거 참여 지방 당원 수를 줄이는 양원 의원총회를 열어 뽑을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두고 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이번에 긴급성이 인정돼 간이 선거법을 택한 것이다.
일본 언론 추산에 따르면 스가 장관은 지방 당원 표가 줄면서 파벌별로 결정한 국회의원 표만으로 전체 투표수의 53∼55%를 이미 확보해 투표일인 14일까지 아주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아베 내각'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는 '스가 내각'이 출범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일본 일각에선 이번 새 총리 선출을 놓고 국민은 고사하고 자민당 전체 당원의 의사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파벌 정치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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