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정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뒷전'…아랍국가들의 자국 우선주의 반영
(카이로=연합뉴스) 노재현 특파원 = 이스라엘과 걸프지역 국가 아랍에미리트(UAE)가 지난달 13일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평화협약('아브라함 협약')을 타결한 뒤 양국관계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이끄는 미국 대표단과 이스라엘 정부 대표단은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일까지 UAE 수도 아부다비를 방문해 수교 문제를 논의했다.
이때 이스라엘 민항기는 사상 처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상공을 통과해 UAE 상공을 날았다. UAE는 이슬람 아랍국가 중 이집트, 요르단에 이어 세 번째이자 걸프 지역 아랍국가로는 최초로 이스라엘과 수교에 합의했다.
아랍국가들은 과거 팔레스타인 분쟁 등을 이유로 이스라엘과 적대적 관계였는데 UAE는 이스라엘의 친구로 돌아선 것이다.
'국제사회에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이슬람 수니파 국가 UAE는 이스라엘과 수교함으로써 양국이 '공동의 적'으로 여기는 이슬람 시아파 맹주 이란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협약을 중재한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고 첨단기술이 발달한 이스라엘과 교류함으로써 경제적 이익도 기대할 수 있다.
이스라엘-UAE 평화협약이 중동 정세를 흔든 가운데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캠프데이비드 협정이 곧 42주년을 맞는다.
1978년 9월 17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는 미국 백악관에서 캠프데이비드 협정에 서명했다.
1948년 건국한 이스라엘이 아랍권 국가와 최초로 맺은 평화협정이다.
카터 대통령은 그해 9월 5일 사다트 대통령과 베긴 총리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데이비드로 초청했다.
그리고 13일 동안 회담을 거쳐 역사적인 협정이 탄생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캠프데이비드 협정 후 6개월이 지난 1979년 3월 공식적인 평화조약을 맺었다.
이스라엘-UAE 평화협약은 42년 전 캠프데이비드 협정과 일정 부분 닮았다.
중동 문제의 핵심인 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에서 한계가 뚜렷하다는 점에서다.
2개 합의에는 모두 의제로 팔레스타인 문제가 포함되긴 했다.
다른 아랍권 국가들의 반발을 의식한 결과이지만 팔레스타인인의 평화를 위한 눈에 띄는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집트는 캠프데이비드 협정으로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이른바 '6일 전쟁') 이후 빼앗겼던 시나이반도를 이스라엘로부터 돌려받기로 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서는 과도기간(5년 이내)을 거쳐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한다는 모호한 수준의 합의에 그쳤다.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회담에서 자국 현안에 집중하느라 팔레스타인 문제에 신경을 크게 쓸 수 없었다.
결국 이스라엘은 캠프데이비드 협정 이후에도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며 점령정책을 강화했다.
이집트가 아랍권의 공적으로 통하던 이스라엘과 손을 잡은 대가는 컸다.
당시 아랍권의 맹주를 자처하던 이집트는 아랍 세계의 분노를 사며 고립됐다.
이집트는 아랍권 국제기구 아랍연맹(AL)에서 쫓겨났다.
사다트 대통령은 1981년 10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쏜 총탄에 숨졌다.
이스라엘-UAE 평화협약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얼마나 도움을 줄지 미지수다.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는 이스라엘-UAE의 평화협약이 발표되자 "UAE의 배신"이라며 반발했다.
UAE는 이스라엘이 평화협약에 합의하면서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의 합병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반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서안 합병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고, 미국의 요청으로 잠정적으로 중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상황에 따라 서안 합병을 다시 추진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뒤 요르단강 서안을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다.
또 네타냐후 총리가 최근 서안 합병을 추진하기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에서 UAE의 관련 발표는 의미가 크지 않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자신의 부패 혐의 재판 등으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UAE 평화협약과 캠프데이비드 협정은 모두 국제사회의 냉혹한 일면을 보여준다.
겉으로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에 땅을 빼앗긴 팔레스타인의 권리와 대의를 지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외교에서는 팔레스타인 문제보다 자국 이익을 먼저 챙기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수십년간 강대국 미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국제법을 무시하는 '마이웨이' 행보를 이어왔다.
이제 걸프국가 UAE까지 이스라엘에 힘을 실어주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기댈 곳은 더욱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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