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사철 다가오는데…전세 물량 품귀에 전셋값은 급등(종합)

입력 2020-09-06 14:51   수정 2020-09-07 08:30

가을 이사철 다가오는데…전세 물량 품귀에 전셋값은 급등(종합)
"부르는 게 값"…한달새 보증금 3억원 오른 곳도
서울 외곽 전셋값도 만만치 않아…전세난 우려
새 임대차법으로 2년 계약 연장되는 임차인들은 일단 '안도'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서울에서 전세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선 새 임대차 법 시행에 따라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기존 전셋집에 2년 더 거주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전세 매물이 예년보다 크게 줄고 있다.
여기에 매물로 나온 전세는 집주인들이 보증금을 크게 올려 받으려 해 껑충 뛴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세입자들은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는 임차인들은 당장은 새 전셋집을 구하지 않아도 되고 전셋값 인상 부담도 크진 않지만 벌써부터 2년 뒤가 걱정이다.

◇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으로 전세 물건 줄어…"전세 부르는 게 값"
6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에서 전세 물건이 크게 줄고, 전셋값이 폭등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전체 9천510가구 규모로 서울 최대 단지로 꼽히는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의 경우 현재 나와 있는 전세 물건이 평형당 1∼2개에 불과하다.
헬리오시티 인근 H 공인 관계자는 "전세가 정말 몇 개 없다. 중개업소들이 인터넷에 비슷한 물건 올린 걸 빼면 더 적을 것"이라며 "임대차법 시행 이후 임차인들이 안 나가고 2년 더 살려 하면서 물건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전셋값은 최근 크게 올라 전용면적 84.98㎡의 경우 지난달 5일 보증금 9억5천만원(23층)에 거래된 뒤 지금은 시세가 11억∼12억원에 형성돼 있다. 이마저도 물건이 없는 상황이다.

준공 44년을 맞은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3차의 경우 최근 82.5㎡가 보증금 9억원에 전세 계약서를 쓴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평형은 지난달 3일 6억원(10층)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는데, 한 달 사이 보증금이 3억원 오른 셈이다.
이 단지 인근 H 공인 대표는 "연초 5억∼6억원 하던 전셋값이 지금은 집주인이 수리를 안 해주는 조건으로 7억원 이상, 수리를 해주면 8억5천만원 수준까지 오른 상태"라며 "이마저도 물건이 귀해 나오면 오른 값에 계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압구정동 A 공인 관계자는 "다른 지역에서 전세로 사는 집주인이 임대차법 때문에 이쪽 집 보증금을 시세대로 올리지 못하게 됐다면서 직접 들어와 살겠다고 한다"며 "이런 식으로 전세는 매물이 점점 없어져 올겨울에는 10억원까지 뛰지 않을까 싶다"고 예상했다.
총 6천864가구로 대단지인 송파구 신천동 파크리오는 전체 단지에서 전세로 나온 매물이 2건인 것으로 네이버부동산 등 인터넷상에서 검색된다.
현재 이 아파트 84.9㎡는 보증금 11억원(저층)에 매물로 올라와 있다. 해당 평형은 지난달 18일 보증금 8억원(10층)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는데, 보름여 만에 호가가 3억원 뛴 셈이다.
신천동 J 공인 관계자는 "다들 기존 임차인들이 재계약을 하는 통에 전세가 안 나온다. 집주인들도 매매에 대비해 양도세 공제를 받으려 직접 들어와 사는 경우가 늘어 전세는 더 씨가 말랐다. 물건이 없다 보니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 2년새 수억원 오른 전셋값에 외곽으로 밀려나는 임차인들
전세 물건이 조금 있는 지역도 전셋값이 최근 크게 뛰어 세입자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3천885가구 규모인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의 경우 59.96㎡가 지난달 5억5천만∼6억5천만원 선에서 지금은 7억5천만원까지 올랐다. 같은 아파트 84㎡ 전셋값은 1∼2개월 사이에 8억∼8억5천만원에서 9억5천만원으로 뛰었다.
아현동 H 공인 대표는 "이쪽은 전세가 없어 난리가 난 정도는 아니지만, 가격이 많이 올라 세입자들이 부담을 느껴 계약은 주춤한 상황"이라며 "그나마 인근에 신축 아파트가 있어 전세 사정이 좀 나은 편"이라고 했다.

인기 거주 지역으로 꼽히는 강남권이나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이 아니더라도 이런 분위기는 비슷하다.
신천동 J 공인 관계자는 "지난주에 전세 손님이 왔는데, 이쪽엔 집이 없고 가격도 너무 올라 풍납동과 강동구 쪽, 한강 이북의 자양동까지 같이 알아봐 줬는데, 그쪽도 집이 없더라. 지금 전세 구하는 사람은 자기 예산 범위에서 괜찮은 집을 구하려 하지만, 결국 외곽으로 밀려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 외곽으로 분류되던 지역에서도 교통이 좋고 주거환경이 양호한 지역을 중심으로 전셋값이 오르고 있다.
노원구 중계동 청구3차 84.77㎡는 지난달 27일 보증금 6억원(3층)에 전세 거래가 이뤄지며 처음 6억원을 돌파했다.
관악구 봉천동 관악드림(동아) 84.96㎡는 지난달 5일 5억1천만원에 거래되면서 기존 신고가를 경신했고, 구로구 신도림동 대림3차 e편한세상 84.51㎡ 지난 11일에 5억원에 거래돼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썼다. 대림3차 e편한세상은 현재 전세 물건이 하나도 없는 상태다.
성동구 금호동 중소형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하는 최모(37)씨는 "집주인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고 해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2년 전 4억8천만원이던 전셋값이 지금은 6억5천만원으로 뛰었다. 인근 시세도 비슷해 이 동네에서 전셋집 구하는 건 힘들 것 같다"며 한숨 지었다.

◇ 새 임대차법으로 2년 더 살 수 있는 임차인들은 일단 '안도'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퇴거를 요구하지 않아 계약을 2년 더 연장하게 된 임차인들은 일단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마음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강동구 천호동의 84㎡형 아파트에 사는 A씨는 "계약 만기가 도래했는데 새 임대차 보호법 덕에 보증금을 올리지 않고 2년 더 거주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면서 "2년 전보다 전세 시세가 2억원 넘게 뛰었는데, 집주인은 돌려줄 보증금을 5% 올리는 게 의미 없다며 그냥 두겠다고 한다. 나야 좋지만, 사실 눈치도 조금 보인다"고 말했다.
A씨는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이제 2년 뒤에는 꼼짝없이 나가야 하는데, 전셋값이 너무 크게 올라 걱정"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새 임대차법이 좋은 취지와는 달리 시행 초기 전세 공급 축소와 전셋값 상승을 야기하고 있어 신규 세입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난이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김규정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전월세 시장이 안정적인 시기에 임대차 3법이 통과되었으면 시장에 충격이 덜 했을 텐데, 전세 수요가 몰리고 공급이 부족해 가격이 오르는 시점에 법이 시행되면서 전세 시장이 더 불안해진 측면이 있어 타이밍이 아쉽다"고 말했다.
dk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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