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따블라디] 그냥 넘어가나 했는데…6년째 침수 독립운동가 유허비

입력 2020-09-12 07:07  

[에따블라디] 그냥 넘어가나 했는데…6년째 침수 독립운동가 유허비
고종의 밀사 보재 이상설 선생의 '유해' 뿌려진 강물 주변에 세워져
태풍 마이삭·하이선 등 태풍 지나면서 물에 잠겨…2015년부터 반복

[※ 편집자 주 : '에따블라디'(Это Влади/Это Владивосток)는 러시아어로 '이것이 블라디(블라디보스토크)'라는 뜻으로, 블라디보스토크 특파원이 러시아 극동의 자연과 역사,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생생한 소식을 전하는 연재코너 이름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김형우 특파원 = "올해는 다행히 넘어가나 싶었는데, 결국 잠겨버렸네요."
지난 11일 오후 기자가 러시아 연해주(州)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를 내달려 도착한 우수리스크 외곽의 보재(溥齋) 이상설(1870∼1917) 선생 유허비는 불어난 강물에 잠겨있었다.



유허비 주변을 흐르는 라즈돌나야(수이푼·솔빈)강 역시 2차례에 걸친 대형 태풍을 지나면서 크게 불어났다.
이 여파로 유허비 주위는 황토색 강물로 뒤덮여 있었다. 폭 1m에 2.5m 높이의 화강암 석조물 하단부는 침수됐고 유허비를 둘러싼 나무와 철제 틀만 간신히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유허비로 통하는 한쪽 도로는 물에 잠겨 현지 주민들이 자유롭게 오고 가지 못하고 있었다.
차를 타고 유허비 주변을 둘러보던 한 주민은 연합뉴스에 "2015년부터 여름철이면 강이 계속 범람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주민은 기자에게 유허비 인근 나무에 누군가 묶어 놓은 강물 높이 측정 판을 가리키며 "올해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라며 "작년에는 강물이 도로 전체를 잠기게 했다"고 말했다.
올해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강물이 범람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 3일부터 연이어 몰아닥친 2개의 대형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의 여파로 이런 기대가 산산이 깨졌다.
우수리스크에 위치한 한국농어촌공사 러시아 극동 영농지원센터 정희익(59) 센터장은 "잘 넘어가나 싶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잠겼다"면서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상설 선생은 1907년 이준, 이위종 선생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 밀사로 참석해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이후 활발하게 중국과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1917년 순국한 그는 임종 전 "조국 광복을 이룩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孤魂)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라며 "내 몸과 유품, 유고는 모두 불태워 강물에 흘려보내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한 한을 품고 눈을 감은 그의 유해는 재가 돼 라즈돌나야강 강에 뿌려졌다.
이를 기리기 위해 광복회와 고려학술재단은 2001년 10월 18일 선생의 유골이 뿌려진 강변에 유허비를 세웠지만, 현지에서의 어려운 상황 탓에 유허비의 관리 주체가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지난달 15일 우수리스크에 있는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와 한국 기업·교민들이 유허비를 공동으로 관리하기 위한 '이상설 유허지 돌봄이'라는 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지난달 1일에는 김 니콜라이 회장 등이 나서 유허비 주변부를 유수에 의한 침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구조물을 설치하고 진입로를 다지는 작업까지 했다.
매년 침수가 반복되면서 현지에서는 유허비 이전 등의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후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 등은 수몰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유허비를 이전하는 문제에 관해 논의하기도 했지만,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vodcast@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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