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화재로 1만1천500여명 거처 잃어…심각한 인도적 위기 봉착
폐기물장·주유소 등서 생활…상당수 음식·식수도 공급 못받아
캠프 내 코로나19 확진자들 행방 묘연…바이러스 공포까지 엄습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대형 화재로 전소된 그리스 레스보스섬 모리아 난민캠프의 인도주의적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로이터·AFP 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8일과 9일 이틀 연속 모리아 캠프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1만1천여명이 거처를 잃고 노숙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모리아 캠프는 주로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해 중동·아프리카 출신 난민 희망자 1만2천600여명이 체류해온 그리스 내 최대 난민촌이다.
정원(2천757명)을 5배 가까이 초과한 최악의 거주환경 속에서 수년간 생활해왔는데 화재로 이제 그마저 사라진 것이다.
상당수 난민은 캠프 주변 도로에서 사흘 밤을 지새웠으며, 일부 난민은 여기서도 밀려나 주변 폐기물장과 올리브 과수원 등에서 노숙하고 있다.
이들은 음식 또는 식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가운데 화장실이나 샤워실조차 없는 환경을 견디고 있다.
캠프에서 혼자 살아온 알리라는 이름의 19세 청년은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거의 이틀 동안 굶었다며 "어디 갈 곳이 없다. 모든 상황이 점점 악화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번 화재로 집을 잃은 이재민 수가 전체 체류자의 91%인 1만1천50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2천200명은 여성, 4천명은 어린이로 파악됐다. 전체 70% 이상은 아프가니스탄 출신이다.
모리아 캠프에서 5㎞가량 떨어진 곳에 또 다른 난민캠프가 있지만, 그곳 역시 정원을 한참 초과한 과밀 상태라 하룻밤을 청할 공간이 없다고 한다.
그리스 당국은 이재민이 된 캠프 체류자 약 2천명을 페리와 2대의 해군 함정에 나눠 임시 수용하는 방안을 마련했으나 실제 수요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까지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연합(EU) 소속 10개 회원국 역시 도움의 손길을 내밀겠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수용 규모는 부모가 없는 미성년자 400명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그리스 당국은 피해를 본 체류자들의 본토 이송 방안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혀 이들의 비인간적인 생활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국은 모리아 캠프 인근 언덕에 있는 군 사격장에 임시 거주시설을 건설하는 작업에 착수했으나 또다른 난민캠프 설치에 반대하는 현지 주민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레스보스섬에 비상사태를 선포한 그리스 정부는 EU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갈망하고 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도 11일 기자회견에서 EU가 난민 수용과 새 거주시설 건설에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당국은 불에 탄 모리아 캠프 주변에 특수 경찰 요원을 배치해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일부 체류자들이 불에 타지 않은 가재도구를 찾겠다며 들여보내 달라고 요청했으나 경찰은 안전사고 등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설상가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공포도 점증하고 있다.
불이 나기 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30명 이상의 캠프 체류자 가운데 현재까지 신병이 확보돼 격리된 수는 8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행방조차 알 수 없는 상태다.
특히 많은 체류자가 무방비 상태로 노숙하는 상황이라 그리스 당국은 행여나 레스보스섬 내에 바이러스가 급속히 전파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레스보스섬 행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통제하기 어려운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며 "한쪽은 바이러스, 또 한쪽은 굶주림 속에 절망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 때문에 모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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