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쓰는 이유 분석한 논문 "단순 승리 아닌 '이상적 플레이' 욕망"
핵 차단 기술은 새로운 공격에 뚫려…심층 연구 병행할 필요 대두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온라인 게임의 발전사에는 게임 핵(hack·치팅 프로그램)의 발전사가 검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대한민국 게임백서 2010'에 따르면 2005∼2009년 온라인 게임 시장이 1조4천억원에서 3조3천억원 규모로 성장하는 사이 온라인 게임 해킹도 연간 440건에서 1천350건으로 늘었다.
태곳적부터 놀이와 부정행위는 뗄 수 없는 사이였다고 한다.
게임학계는 '놀이하다'와 '속이다'의 라틴어 어원이 'ludo'와 'deludo'로 닮았다는 사실을 자주 인용한다.
게임 핵은 장르도 가리지 않는다. 도시가 발전하면 슬럼가가 생기듯, 온라인 게임이 사람을 모으면 자연스레 핵이 암약한다.
게이머들은 게임 핵은 결국 인간 욕망의 부산물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모이면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남을 이기거나 자신을 과시하려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핵을 쓰는 게이머의 행동을 욕망 이론으로 분석한 논문도 발표됐다.
게임 기획 전문가인 안진경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가 한국게임학회 저널에 게재한 '온라인게임의 치팅 프로그램에 나타난 플레이어의 욕망: 슈팅 장르를 중심으로' 논문이다.
안 교수가 FPS '배틀그라운드'에서 핵 이용자가 나타내는 행동을 분석해보니, 핵 이용자들은 자신이 욕망하는 '모델 플레이어'를 모방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단순히 '승리'하려고 핵을 쓰는 게 아니라, 이상적인 플레이에 가깝게 '승리하는 모습'을 모방하기 위해 핵을 쓴다는 것이다.
배틀그라운드 핵 이용자는 에임 핵(상대를 자동 조준하는 핵)을 사용하면서도 핵을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연기하거나 총알 몇 발은 일부러 빗맞히는 모습을 보였다.
안 교수는 "이런 모습은 생물학적 한계를 과학 기술로 극복하고자 로봇 팔을 신체에 연결하는 '트랜스 휴먼' 개념과 닮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트랜스 휴먼 욕망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실패를 거듭하는 일반적인 플레이를 '장애'로 취급하면서 실패와 반복의 미학을 부정한다"고 꼬집었다.
안 교수의 견해는 단순히 이기고 싶거나 높은 순위를 자랑하고 싶어서 핵을 쓸 거라는 게임업계의 고정관념에 새로운 시각을 불어넣는다.
게임사들은 핵을 방지하기 위해 핵 탐지·차단 기술이나 신고 시스템을 강화한다.
그러나 방어가 발전하면 새로운 공격법이 개발되기 마련이라, 기술적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안 교수는 논문 결론에서 "부정행위에 대응하고 처벌할 방법을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게임과 플레이어 사이의 상호작용을 추적하고 '무엇이 핵을 사용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답을 모색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한 해외 게임사는 부정행위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돈을 주고 핵을 사서 써보기도 하고, 핵 이용자의 플레이 패턴과 승률을 분석해 공개하기도 하는 독특한 대처법을 보인다.
그러면서 자신(부정행위 방지 담당자)은 '1414년에 비행선 경주에서 부정행위를 벌이다가 우주에서 부정행위를 근절하지 못하면 영원히 고통받을 위기에 처했다'며 의뭉스레 농을 던진다.
이 회사는 라이엇게임즈, 게임 이름은 '리그 오브 레전드'(LoL)다.
잘 되는 게임에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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