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지난해 보험사기로 적발된 인원은 9만3천명, 적발 금액은 8천800억원입니다. 전체 보험사기는 이보다 몇 배 규모로 각 가정이 매년 수십만원씩 보험료를 추가로 부담하는 실정입니다. 주요 보험사는 갈수록 용의주도해지는 보험사기에 대응하고자 보험사기특별조사팀(SIU)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SIU 보험조사 파일' 시리즈는 SIU가 현장에서 파헤친 주목할 만한 사건을 소개합니다.]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강원도에 사는 30대 후반 송모씨는 지난해 욕실에서 거품에 미끄러져 다쳐 척추 장해가 남았다며 미래에셋생명에 후유장해 보험금을 청구했다.
2018년 송씨가 가입한 상품은 재해로 후유장해가 생겼을 때 최대 3억원을 보장하는 종신보험이다.
특이하게도 송씨는 다친 후 집 근처 병원이 아니라 차로 두시간이나 걸리는 수도권의 A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추간판탈출증(디스크) 후유장해 진단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후유장해는 여러달에 걸쳐 충분히 치료를 받고도 완치되지 않았을 때 진단받게 되는 데 비해 송씨는 전체 치료기간이 매우 짧았다.
의심스럽게 여긴 보험사 SIU가 한국신용정보원에 타사의 보험가입 내역을 조회했더니 송씨가 가입한 유사 보험이 총 9건이나 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재해장해 보험금을 합치면 총 11억원으로 파악됐다. 월 납부 보험료는 송씨의 소득 수준에 비해 과도한 95만원이나 됐다. 보험사기 위험도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SIU가 계약자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한 결과 송씨를 가입시킨 보험설계사 B는 2018년에 송씨를 비롯해 10여명에게 같은 상품을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약자 대부분이 송씨처럼 추간판탈출증 후유장해로 보험금을 타갔다거나 청구한 상태였다.
더 놀랍게도 이들은 모두 송씨와 같은 병원에서 단기간 입원 또는 외래 진료 후 장해진단을 받았다. 계약자들의 거주지는 서울, 인천, 부천, 안양, 춘천, 원주 등 수도권과 강원지역으로 다양했고, 병원 소재지에 사는 계약자는 한명밖에 없었다.
신용정보원 조회 결과 이들도 송씨와 같은 보험설계사를 통해 재해장해 보험금이 총 10억원 안팎이 될 정도로 다수 보험을 가입하고 있었다.
보험설계사 B는 특정 보험사가 아니라 법인보험대리점(GA) 소속으로, 여러 보험사의 상품을 취급했다.
재해(사고) 경위가 객관적이지 않고 정황이 불명확한 점도 비슷했다.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또는 공중시설 내 사고처럼 객관적 기록이 남는 재해는 한 건도 없었고 대체로 "혼자 넘어져 다쳤다"는 본인 진술뿐이거나 가까운 친척의 증언만 있었다.
SIU는 보험설계사가 가담한 보험사기로 자체 판단을 내렸지만 조사를 진행하며 최대한 증거를 확보하려고 3개월이 넘게 더 지켜봤다. 사건 인지 초기, 동일한 보험설계사를 통해 보험에 들었지만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가입자가 일부 있었다. 몇달 후 이 가입자도 같은 병원에서 작성한 장해진단을 제출하며 보험금을 청구했고 SIU는 보험사기로 결론 내리고 금융당국에 보고하고 올해 초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미래에셋생명 SIU가 파악한 사기 '피해' 규모는 자사를 포함 16개 보험사에 9억4천만원이다.
이 과정에서 A병원은 환자가 원하는대로 허위 장해진단을 발급한 혐의를 받는다.
강원도에 거주하는 송씨는 다친 상태로 멀리 떨어진 A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이유에 대해 본인이 직접 병원에 가서 자해진단을 받은 게 아니라 대리인이 자료를 제출했다고 보험사에 진술했다.
또 가입자들이 장해진단을 받은 일자와 A병원 의료진의 진료일정을 비교한 결과 9명은 진단 의사가 외래진료를 하지 않은 날에 장해진단을 받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미래에셋생명 관계자는 "SIU는 수사권이 없어 병원이나 의료진의 가담 정도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남은 수사와 재판에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SIU의 의뢰를 바탕으로 수사를 벌여 보험설계사 B와 법률사무소 브로커 등이 공모해 병원과 계약자를 가담시켜 후유장해 허위 진단으로 보험금을 타낸 사기 사건으로 결론내리고 이달 중순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수원지검에 넘겼다.
19일 보험업계 관계자는 "척추 관련 후유장해는 상대적으로 보험사기가 잦은 분야"라며 "2018년 인정 요건이 엄격해진 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사기 시도가 계속 나타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보험사기범 탓에 선량한 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이 커지고 보험금을 받기도 까다로워질 수 있다"며 "수사당국과 법원이 보험사기에 엄정하게 대응해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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