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교 후 미 최고위 국무부 관리 직접 참석, 日아베도 추도사
중국은 연일 대규모 무력시위…군용기 19대 대만협 중간선 넘어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이 '대만 독립 세력의 수괴'라며 그토록 미워했던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 총통의 고별 추도 행사가 19일 대만에서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1979년 단교 이후 대만을 방문한 최고위급 미국 국무부 관료인 키스 크라크 경제 담당 차관이 직접 참석했고, 중국이 극도로 싫어하는 티베트의 종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도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19일 대만 중앙통신사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단수이(淡水) 진리(眞理)대학 내 교회에서 지난 7월 30일 9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리 전 총통의 고별 추도 행사가 열렸다.
유족과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을 비롯한 대만 정·관계 인사, 크라크 차관과 모리 요시로 전 일본 총리와 대만 주재 각국 관계자 등 외빈 등 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행사는 기독교식으로 진행됐다.
화장된 리 전 총통의 유골이 놓인 하얀 관 안에 선 차이 총통은 추도사에서 "비록 리덩후이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대만에 남긴 자유와 민주주의의 정신은 대를 이어 대만 인민에게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는 이날 추도식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지만,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리덩후이가 온 힘으로 대만의 민주주의와 중화 문화를 지켜낸 것을 우러러 탄복한다"며 "좋은 친구로서 나는 그를 때때로 그리워하고 불교도로서 그를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는 1997년 대만을 방문해 당시 총통이던 리덩후이를 만난 바 있다.
또 최근 물러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도 대만 내 실질적인 외교 공관 성격인 일본대만교류협회 대만사무소 대표를 통해 추도사를 보냈다.
아베 전 총리는 대만사무소 대표가 대독한 추도사를 통해 "리덩후이는 자유, 민주,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대만에 뿌리내리게 했고 일본과 대만의 상호 이해와 우호에도 중대한 공헌을 했다"고 말했다.
리 전 총통은 장제스(蔣介石·1887∼1975)의 아들인 장징궈(蔣經國·1910∼1988)에 이어 1988년부터 2000년까지 대만 총통을 지냈다.
국민당 소속 총통이면서도 재임 시절 국민당 독재를 스스로 끝내고 다당제와 총통 직선제를 도입해 그는 '대만의 미스터 민주주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재임 말기에는 그는 중국 본토와 대만이 각각 별개의 나라라는 '양국론'(兩國論)을 들고나와 양안 관계에 일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퇴임 이후에는 대만 독립 성향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면서 대만 독립 지향 세력 사이에서는 '대만의 아버지'로 불렸지만, 반대쪽에서는 '대만 독립 세력의 수괴'로 비난받았다.
대학교수이던 차이 총통을 발탁해 정계로 이끈 것도 리 전 총통이다.
미국 정부가 이런 리 전 총통의 추모 행사에 고위급 대표단을 정식으로 보낸 것은 대만을 중화인민공화국의 위협에 맞서 '민주주의의 보루'로 규정하는 차이잉원 현 총통에게 정치적으로 힘을 실어줘 '민주주의 연대'를 강화하는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중국은 리 전 총통의 추도식 참석을 명분 삼아 크라크 차관 일행히 대만을 방문한 것을 두고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어깃 것이라면서 강력한 불만을 표출했다.
중국군이 18일부터 대만 인근 지역에서 대대적인 무력시위성 군사훈련을 시작한 가운데 이날부터 이틀 연속 중국군 군용기들이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해 대만 섬에 다가가 대만 전투기들이 맞대응하는 긴박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대만 국방부는 19일 중국 군용기 19대가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 대만 서남, 서북 공역에 들어와 대만 공군기들이 출동해 무선 통신으로 퇴거를 요구하고 감시 활동을 벌였다고 밝혔다.
전날에도 훙(轟·H)-6 폭격기, 젠(殲·J)-16 전투기 등 중국군 폭격기와 전투기 18대가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들어와 무력시위를 벌인 가운데 이 중 12대는 중국과 대만의 실질적 공중 경계선인 중간선을 침범했다고 대만 국방부는 주장했다.
런궈창(任國强)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대만해협 부근에서 실전적인 훈련을 한다. 이는 국가 주권과 영토 보존을 위해 정당하고 필요한 행동"이라고 말해 이번 대규모 훈련이 대만과 미국의 '밀착'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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