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월 5만원권 한은 금고 환수율 30%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성서호 한혜원 기자 = 올해 4월 집 공사를 마친 직장인 A(50)씨는 공사대금을 치르는 과정에서 낭패를 겪었다.
공사대금을 현금으로 달라는 업자의 요청으로 인근 은행 지점을 찾아 현금 2천만원 인출을 요구했으나 그만한 현금이 없다는 말을 듣고 일부만 인출했다. 그것도 5만원과 1만원 묶음을 섞어 받았다.
결국 날을 나눠 현금을 인출한 그는 당시의 경험으로 이후 5만원권을 300만원가량 비상용도로 집에 따로 두게 됐다.
작년 11월 둘째를 출산한 B(32)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당시 산후조리원에서 마사지 추가 비용 200만원을 계산해야 했는데, 조리원 측에서 계좌이체도 아닌 현찰로 줄 것을 요청해 은행을 방문해야 했다.
지난 6월 한 시중은행 지점에서는 '한국은행에서 5만원권 발행이 잠정적으로 중단됨에 따라 ATM 출금 시 5만원권이 출금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결과적으로 한은이 5만원권 발행을 중단했다는 것은 잘못된 안내였으나 5만원권을 손에 넣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 8월까지 5만원권 환수율 30% 미달…미국·유로존 대비 유독 낮아
21일 한은에 따르면 올해 1∼8월 5만원권 발행액은 총 16조5천827억원이다.
이에 비해 시중 유통 후 한은 금고로 돌아온 환수액은 4조9천144억원으로, 환수율은 29.6%에 그친다.
한은 금고로 돌아오지 않은 나머지 5만원권은 가계·기업·금융기관 등 경제주체들이 거래나 예비 목적 등으로 보유하고 있는 이른바 '화폐발행 잔액'이다.
기간을 7월까지로 잡았을 때 올해 들어 5만원권의 환수율은 31.1%(환수 4조7천602억원/발행 15조3천36억원)로, 2014년(연간 환수율 25.8%) 이후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근 5년 같은 기간(1∼7월)과 비교해 올해 발행액은 최대인 반면, 환수액은 최소 수준으로 집계됐다.
5만원권의 환수율은 다른 나라의 고액권과 비교했을 때 유독 낮다.
미국의 최고액권 화폐인 100달러의 환수율은 ▲ 2015년 79.4% ▲ 2016년 77.6% ▲ 2017년 73.9% ▲ 2018년 75.2% ▲ 2019년 77.6%로 줄곧 70%를 웃돌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최고액권 화폐 500유로의 환수율도 ▲ 2015년 95.8% ▲ 2016년 151% ▲ 2017년 117.8% ▲ 2018년 94.5%로 90%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 꽁꽁 잠긴 5만원, 왜?…코로나19·음성거래 용도 등등
이처럼 5만원권 환수율이 저조한 이유 중 하나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꼽힌다.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자 비상용 현금으로 5만원을 쌓아두는 경향이 짙어진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다른 나라 고액권보다 환수율 낮은 가장 큰 이유는 5만원권은 2009년에야 발행돼 역사가 짧기 때문"이라며 "올해의 경우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 충격으로 화폐를 보유하고자 하는 예비용 수요가 늘어나 환수율이 떨어졌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A씨와 B씨 사례처럼 서비스 거래에서 5만원권을 현찰로 줄 것을 요청받는 경우가 잦은 것도 사실이다.
통상 이 경우 세금을 아끼려는 즉, 탈세하려는 의도로 의심할 수 있다.
김대지 국세청장은 지난달 3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5만원권의 낮은 환수율 문제를 지적받자 "고액 화폐 수요 증가 원인은 저금리 기조도 있지만, 탈세의 목적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는 "신용카드, 디지털 화폐 등으로 전체 현금 거래는 장기적으로 줄겠지만, 여전히 현금 거래 수요가 어느 정도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아직 관련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5만원권이 (탈세용 거래 같은) 지하경제 용도로 특별히 많이 쓰인다는 얘기는 단정적으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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