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처 토스카나주 패배에 우파 내 '리더십·입지' 타격 관측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반(反)난민 기치를 내걸고 승승장구하던 이탈리아 극우 정치인 마테오 살비니(47)가 지방선거에서 기대에 못미친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83) 전 총리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며 내심 품어온 내각 수반의 꿈도 가물가물하다.
살비니가 속한 극우정당 동맹이 주도하는 우파연합은 20∼21일(현지시간) 치러진 7개 주 동시 지방선거에서 독자적인 정당 시스템을 가진 프랑스어권 자치주 발레다오스타를 제외한 6개 주 가운데 베네토·리구리아·마르케 등 3개 주에서 승리했다.
연립정부의 한 축인 중도좌파 민주당 역시 토스카나·캄파니아·풀리아 등 3개 주를 가져가면서 표면적으로는 범좌파와 범우파가 무승부를 기록했다.
하지만 현지 정가에서는 우파 진영이 사실상 패배한 선거라고 보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특히 최대 승부처로 꼽힌 중부 토스카나주를 빼앗아오지 못한 것은 우파에게 뼈아프다.
북부 에밀리아-로마냐주와 함께 지난 50년간 '좌파의 성지'로 불린 토스카나를 가져왔다면 연정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결정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여러모로 우파에 유리한 여건이었다.
우파연합이 50%에 육박하는 '콘크리트 지지율'을 유지한데다 연정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 회복 정책과 전국 일선 학교 대면 수업 재개 등 주요 사안에서 그리 유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실망하는 여론의 기류도 나타났다.
살비니도 이달 초 '전승'이 목표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이 충만했다.
실제 투표 전 마지막 여론조사상으로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우파연합이 크게 앞서거나 박빙 대결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나 우파의 압승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막상 투표함을 개봉한 결과는 세간의 예상과 달랐다.
박빙이라던 토스카나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우파연합 후보를 8%포인트 차로 여유 있게 따돌렸고 우파의 쾌승을 예상한 남부 풀리아도 8%포인트 차의 민주당 승리로 귀결됐다.
우파 진영에서는 애초 기대에서 크게 벗어난 선거 결과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 1월 사활을 걸고 당력을 집중한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선거에 이어 중요한 고비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신 살비니를 계속 신뢰해야하는지 깊은 고민에 빠진 모양새다.
전문가들도 이번 선거로 단단한듯했던 살비니의 입지에 금이 갔다는 데 대체로 수긍하는 모습이다.
현지 한 정치 분석가는 23일 영국 일간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 결과는 정치적 스포트라이트를 되찾으려는 살비니의 노력을 손상했다"고 했고, 다른 전문가는 "살비니가 시간이 갈수록 선거에서 '역(逆)미다스의 손'이 되는 것 같다"고 짚었다.
현지 언론에서는 살비니에 대한 대중적 호감과 매력이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다는 평도 나왔다.
이번 선거를 통해 그동안 우파진영의 정치무대를 독점했던 살비니를 위협할 차기 주자가 부상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재선에 성공한 루카 차이아(52) 베네토주 주지사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당시 적극적인 감염 의심자 추적·검사·격리를 핵심으로 하는 한국식 방역 모델로 최악의 위기 상황을 벗어나 지역주민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는 이번 선거에서 77%에 가까운 압도적인 지지로 나타났다.
동맹과 함께 우파연합을 구성하는 또 다른 극우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의 조르지아 멜로니(43) 대표도 우파 진영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다.
살비니와 마찬가지로 반난민 성향을 노골화한 그는 지난 25년 좌파가 우세했던 중부 마르케주에 FdI 후보를 내세워 승리를 견인했다.
중부 아브루초에 이어 마르케까지 FdI 출신 주지사를 배출함으로써 우파 내에서의 정치적 입지가 한층 탄탄해졌다는 평가다.
한편, 선거 이후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던 살비니가 이르면 23일 밤 우파연합 주요 인사들과 회동할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려있다.
ANSA 통신에 따르면 살비니는 이날 한 행사장에서 만난 취재진에 "모든 선거 결과 데이터가 입수되면 오늘이라도 다른 지도자들을 만나 의견을 들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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