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최고위 추기경 돌연 사임…자선기금 부당 사용 의혹(종합)

입력 2020-09-25 19:40  

바티칸 최고위 추기경 돌연 사임…자선기금 부당 사용 의혹(종합)
친형제가 운영하는 자선단체·회사에 경제적 이득 제공 의심
이례적으로 추기경 권한까지 포기…교황 의지 반영된 듯



(서울·로마=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전성훈 특파원 = 교황청의 최고위급 추기경이 비리 의혹에 연루돼 사임했다.
교황청은 24일(현지시간) 밤 죠반니 안젤로 베추(72·이탈리아) 추기경이 시성성 장관직에서 물러났다고 밝혔다.
베추 추기경은 교황 선출 투표권 등 추기경 권한도 포기했다. 교황청 규정상 만 80세 미만의 추기경은 콘클라베를 통한 교황 선출 과정에서 투표권을 행사한다.
그는 교황청의 심장부로 불리는 국무원에서도 요직인 국무부장을 지낸 뒤 2018년 5월부터 순교·증거자의 시복·시성을 담당하는 시성성 장관으로 일해왔다.
그의 갑작스러운 사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청은 베추 추기경이 사임한 이유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례적으로 추기경 권한까지 포기한 점에 비춰 꽤 심각한 비리에 연루된 데 따른 징계성 사임일 가능성이 거론된다.
추기경이 스스로 권한을 포기한 것은 2013년 섹스 스캔들로 문제가 된 스코틀랜드의 케이스 오브라이언 추기경 이후 7년 만이라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사임 이유와 관련해 베추 추기경은 이탈리아 일간 '도마니'와의 인터뷰에서 "베드로 성금(신자들로부터 모금한 자선기금)으로 형제들에게 금전적 이득을 취하도록 도운 의혹이 있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설명했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베추 추기경은 그의 한 형제가 운영하는 구호단체에 최소 60만유로(약 8억2천만원)의 자선기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형제가 대표로 있는 건축 자재 회사를 위해 수십만 유로 규모의 채무 보증 계약을 맺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회사는 주쿠바 교황청 대사관과 주이집트 교황청 대사관에도 납품한 사례가 있다고 한다. 특히 주쿠바 대사관에 대한 납품은 베추 추기경이 대사로 일하던 때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베추 추기경은 "나는 단 한 푼도 훔치지 않았다. 제기된 의혹은 모두 해명이 가능하다"면서 "해당 일에 수사가 진행 중인지는 모르지만 나를 재판에 넘긴다면 적극 변호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앞서 베추 추기경은 국무원이 주도한 부동산 매매 의혹에서도 책임론이 제기된 바 있다.
바티칸 경찰은 국무원이 2014년께 교회 기금 200만달러(현재 환율로 약 23억4천만원)를 들여 영국 런던 첼시 지역의 부동산을 매입하고서 고급 아파트로 개조한 일과 관련해 작년 10월부터 자금 사용의 불법성 등을 수사해왔다.
이는 베추 추기경이 국무부장으로 있던 때 일어난 일이다.
교황의 일상 업무를 관리하고 교황청의 살림살이까지 책임지는 국무부장의 막중한 역할과 권한에 비춰 이를 몰랐을 리 없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그는 "잘못한 게 없다"며 이를 완강히 부인한 바 있다.
jylee2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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