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관위 "대규모 선거법 위반 드러나…국가 긴장상황 방지위해 무효화"
"2주 내 재선거 일정 결정"…저항시위 통해 풀려난 야권인사 총리 대행 맡아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야권의 대규모 총선 불복 시위가 벌어진 중앙아시아 소국 키르기스스탄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일(현지시간) 선거 결과를 무효화했다.
부정 선거를 이유로 재선거를 주장한 야권의 요구가 수용된 것이다.
뒤이어 기존 총리가 사임하면서 전날 야권 시위 과정에서 교도소에서 석방된 야권 정치인이 신임 총리에 올랐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총선 후 이틀째인 이날 현지 중앙선관위원장 누르좐 샤일다베코바는 "국가 긴장 상황 방지를 위해 총선 결과 무효화를 결정했다"면서 "11명의 선관위원 전원이 이 같은 결정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샤일다베코바는 투표과정과 선거운동 기간에 대규모 선거법 위반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앞서 지난 4일 치러진 키르기스스탄 총선에선 소론바이 제엔베코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여당과 친정부 성향 정당들이 90%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둔 것으로 잠정 개표 결과 나타났다.
정당별 비례대표제 형식으로 치러진 총선 잠정 개표 결과 친정부 정당인 '비림딕'(통합당)과 '메케님 키르기스스탄'(내조국 키르기스스탄당)이 각각 25%와 24%를 득표해 120개 전체 의회 의석 가운데 46석과 45석을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3위도 9%를 득표한 친정부 성향의 '키르기스스탄당'이 차지해 16석을 확보했으며, 야당인 '부툰 키르기스스탄'(통합 키르기스스탄당)은 의회 진출 하한선인 7%를 간신히 넘겨 13석을 얻는 데 그쳤다.
전날 이 같은 잠정 개표 결과가 알려지자 야권 지지자 수천 명이 수도 비슈케크와 주요 지방 도시들에서 대규모 저항 시위를 벌였다.
비슈케크에선 5~6천명의 시위대가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 선거에 개입했고 일부 정당이 유권자를 매수했다고 주장하며, 의사당과 정부 청사·비슈케크 시청 등을 점거한 뒤 재선거 실시를 요구했다.
일부 시위대는 부정과 대규모 소요 조직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던 알마즈벡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이 수감된 국가보안위원회(KGB) 산하 구치소로 몰려가 당국과의 협상 끝에 아탐바예프를 석방시키기도 했다.
이후 아탐바예프는 법원 결정으로 수감 상태에서 풀려나 가택 연금에 처해졌다고 그의 변호사가 밝혔다.
시위 과정에선 다수의 사상자가 나왔다.
현지 보건부는 이날 "오후 3시 현재 686명이 의료 지원을 받았으며, 그 가운데 164명이 여러 부상으로 입원했고 1명은 숨졌다"고 전했다.
제엔베코프 대통령은 앞서 시위 사태와 관련 "일부 정치 세력이 총선 결과를 이유로 불법적 국가권력 찬탈을 시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중앙선관위에 선거법 위반 사례를 철저히 조사하고 필요하면 선거 결과를 무효화 하도록 지시했다.
중앙선관위의 선거 결과 무효화로 키르기스스탄 시위 사태는 일단 수습 국면으로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선관위 부위원장 아브디좌파르 베크마토프는 이날 선관위가 2주 안에 총선 재선거 일정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야당 지도자들은 현 의회가 과도정부를 구성하고 뒤이어 총선을 다시 실시할 것을 주문했다.
이 같은 야당의 요구에 따라 새 내각 구성 절차가 시작됐다.
이날 쿠바트벡 보로노프 총리가 자진 사임 의사를 밝혔고, 비상 소집된 의회는 보로노프의 사임을 수리한 뒤 전날 시위 과정에서 교도소에서 풀려난 야권 정치인 사디르 좌파로프를 총리 대행으로 임명했다.
좌파로프는 조만간 새 내각 인선을 발표할 예정이다.
의회는 또 이날 비상회의에서 다스탄벡 드주마베코프 기존 의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에 야당인 '비르 볼'(단결당) 의원 믹티벡 아브딜다예프를 선출했다.
정부와 의회 수장에 야권 인사가 들어서면서 정국 수습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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