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봉쇄령 속 녹색지대 불평등 '그린 아파르트헤이트' 지적도
(프리토리아=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지금 한국은 가을이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봄이다.
봄이면 서울은 노란색 개나리 등과 미국 워싱턴DC는 흰 벚꽃을 각각 떠올린다면 남아공 수도 프리토리아는 무엇보다 보랏빛 자카란다이다.
자카란다는 원래 중남미가 원산지로 프리토리아에는 1888년 JD 셀리어스가 브라질에서 묘목 두 그루를 옮겨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30년 넘게 프리토리아에서 자카란다가 자라면서 시내 경관을 꾸미다 보니 프리토리아의 별칭이 자카란다 시가 될 정도이다.
프리토리아의 인기 음악 라디오방송 이름도 자카란다를 땄다.
남아공에 처음 왔을 때 프리토리아에 관해 물었을 때 봄이 되면 자카란다 가로수가 보랏빛으로 물든다는 설명을 들었다.
보통 귀티가 나는 보랏빛이지만 간혹 흰색 자카란다도 있다.
현재 프리토리아 전역에는 최대 7만 그루의 자카란다가 분포하고 인근 남아공 최대 경제도시 요하네스버그에도 많은 자카란다 가로수가 줄지어 있다.
자카란다의 꽃말 뜻은 남미 원주민어로 '향기로운'이다.
대학생이 시험 때 자카란다 꽃을 머리에 맞으면 모든 과목을 통과한다는 얘기도 있다.
보랏빛 자카란다에 이어 프리토리아에는 역시 연보랏빛 라일락이 진한 향내를 풍긴다.
또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뽕나무와 오디도 반갑다.
프리토리아는 전반적으로 푸른 나무들이 시내를 감싸고 있는 도시다. 차량통행도 적은 편이 아니고 공기도 매우 깨끗한 편은 아니지만 그나마 나무가 많아 청량감을 준다.
보통 남아공의 야외 풍경은 반건조 지역 초원에 가까운데 도시는 나무들로 채워져 있다.
프리토리아 동쪽으로 1시간 정도 4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에말라흘레니도 수목이 우거진 것을 볼 수 있다.
동북부 음푸말랑가 지역은 우리나라의 강원도 비슷한 곳으로 강우량이 많아서인지 삼림이 무성하고 특히 목재 공급을 위한 조림사업이 빽빽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일 한 남아공 현지 지인은 전국 9개 주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곳이 음푸말랑가라면서 그곳으로 주말까지 사흘간 골프 여행을 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푸른 숲의 혜택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돼 있지는 않다.
흑인 밀집지역 타운십을 가면 양철집이 빽빽이 잇닿아 있고 키 큰 나무를 찾기 쉽지 않다. 도로는 먼지로 덮여있다.
최근 둘러본 크루거 국립공원 인근의 한 흑인 타운은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어 도리어 공원이 더 깨끗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세계 곳곳에서 불평등한 현실이 노출됐다.
숲에 대한 접근권도 마찬가지다.
요하네스버그도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 숲 가운데 하나가 조성돼 있지만 부유한 교외에 집중돼 있다.
희망봉이 있는 남단 휴양도시 케이프타운도 밀집된 무허가촌은 도시 가장자리에 있어 대서양 해변 파릇파릇한 산길과 싱싱하게 푸른 산책로와는 거리가 멀다.
인공위성 사진으로 봐도 남아공 모든 도시에서 가난한 흑인 주민들은 녹색지대의 혜택을 덜 받고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록다운(봉쇄령)으로 인해 공원도 폐쇄돼 수백 만명이 집에 머물러 있을 때 운 좋은 소수만이 안식처로 정원을 갖고 있는 현실과 관련, 일각에서는 이를 과거 백인 소수정권하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차별정책)에 빗대 '그린 아파르트헤이트'라고 부른다고 로이터통신이 지난 8월 7일 보도했다.
주거권 단체인 은디푸나 우콰지의 로빈 파크-로스는 로이터에 아파르트헤이트 기획자들이 녹색 공간, 고속도로, 트랙을 이용해 인종별로 구역을 분리했다면서 그 유산이 오늘날 눈에 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200일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봉쇄령은 현재 1단계로 가장 낮은 단계이고 공원은 개방돼 있다.
sungj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