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정부 지원에 반짝 수요 회복…코로나19 재확산에 다시 위기
일자리 부족하자 1명 채용에 1천명 지원…시간당 임금도 '뚝'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지난해 말 런던 금융중심지 '시티 오브 런던'에서 문을 연 '포틴 힐스'(14 Hills)는 이른바 '모던 브리티시'(modern British) 식당이다.
템스강과 런던 브리지가 눈앞에 보일 듯한 야경, 2천200 그루의 나무와 식물을 사용한 독특한 인테리어로 단숨에 인근 금융종사자들이 즐겨 찾는 인기 식당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포틴 힐스' 역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을 피하지는 못했다.
정부의 봉쇄조치 완화에 따라 지난 7월 영업을 재개했지만, 인근 '시티 오브 런던' 금융기관들이 대부분 재택근무로 전환하면서 고객이 절반으로 줄었다.
정부가 1인당 최대 10 파운드(약 1만5천원)의 외식비를 지원하는 '잇 아웃 투 헬프 아웃'(Eat Out To Help Out) 프로그램이 가동된 8월 반짝 수요가 회복됐지만 코로나19 재확산에 맞춰 9월 이후 다시 급감했다.
한때 76명의 종업원이 일했지만 이미 3분의 1가량인 22명이 정리해고됐다.
정리해고 대신 휴직이나 휴가를 보낼 경우 정부가 임금의 최대 80%를 부담하는 '고용 유지 계획'이 종료되는 10월 말 이후에는 추가 인원 감축이 예상된다.
'포틴 힐스'는 유럽에서 가장 심각한 코로나19 타격을 입은 영국 식당업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나마 '포틴 힐스'는 다른 곳에 비해 사정이 나은 경우다.
영국 식당 및 호텔 전문 기업 D&D 그룹 산하 식당인 만큼 코로나19 위기에도 변화를 통해 생존할 수 있는 여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수많은 개인 소유 펍과 식당, 카페 등은 이미 코로나19로 파산하거나 문을 닫았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유명 식당체인인 '프랭키 앤드 베니'(Frankie & Benny's)는 점포 125곳의 문을 닫고 3천명을 감원하기로 결정했고, 3천100곳의 펍과 레스토랑, 호텔을 소유한 그린 킹(Greene King) 역시 79곳의 영업을 중단하고 800명을 정리해고하기로 했다.
앞으로 전망 역시 밝지 않다.
통상 영국 식음료업계에서는 크리스마스가 한 해 가장 큰 대목이지만 지금은 예약손님을 받을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세계 최고의 고급 레스토랑은 물론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한 끼 식사를 제공하던 대중적인 곳까지 영국 식음료 업계의 위기는 심화하고 있다.
한국인으로 '포틴 힐스'를 포함한 D&D 그룹의 오프닝·리모델링 전문 총지배인(managing director)을 맡고 있는 김신태(47)씨를 만나 최근 런던 식당업계의 현황을 들어봤다.
-- 영국 식당들의 사정은 어떤가. 8월 외식을 장려하는 '잇 아웃 투 헬프 아웃' 프로그램으로 한때 수요가 살아났는데.
▲ 정부의 봉쇄조치로 7월 초에야 식당들이 다시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전년 대비 매출이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8월 정부 지원으로 60∼70% 정도로 회복했지만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다시 떨어지는 분위기다.
-- 아예 파산하는 곳도 많은데.
▲ 손님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하지는 못하는 곳이 많다. 식당을 완전히 가동해도 그동안의 손실을 회복하기 쉽지 않은데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를 지키려면 수용 인원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300석 좌석이 있던 곳도 이제는 150명의 손님도 받지 못한다.
-- 정리해고를 하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 '포틴 힐스' 종업원이 한때 76명이었는데 지금은 54명이다. 정부가 최근 오후 10시 이후 펍과 식당 영업을 제한하면서 매출이 추가로 25% 줄었다. 인력을 더 줄이거나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할 수도 있다.
-- 일자리가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인가.
▲ 회사에서 안내직원(receptionist) 한 명을 뽑기로 했는데 24시간 동안 967명이 원서를 내더라. 일자리가 많이 없다 보니 식당 종업원들 시간당 임금도 낮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전에는 웨이터의 시간당 임금이 13 파운드(약 2만원)였는데 지금은 11 파운드(약 1만6천원) 수준이다.
-- 식당별로 더 어려운 곳, 그나마 사정이 괜찮은 곳이 나뉘나.
▲ 런던을 예로 들어보자. 센트럴 런던 지역은 그동안 관광객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해외 관광객이 안 들어오니 이런 곳이 크게 타격을 받았다. '시티 오브 런던' 내 식당들은 금융기관 등의 재택근무로 손님이 확 줄었다. 관광객이나 직장인 의존도가 높지 않은 곳은 그나마 괜찮다. 테라스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의 명암도 엇갈렸다. 코로나19 때문에 아무래도 야외 가든이나 테라스가 있는 곳에 그나마 손님이 몰렸다. 정부에서도 식당 등이 다시 문을 열 때 테라스 등을 많이 허가해줬다.
-- 앞으로의 전망은.
▲ 지금부터가 더 큰 위기다. 8월에는 정부 지원에다 무더운 날씨로 야외 영업 등이 가능해 매출이 상당 부분 늘어났다. 그러나 정부 지원이 끝난 데다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면서 야외 테라스 영업이 가능한 날이나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사람들이 다시 외식을 꺼리는 분위기도 확대되고 있다.
-- 펍과 식당 영업금지를 포함한 제2 봉쇄조치를 전망하는 이들도 있는데.
▲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먼저 식당과 호텔 등 접객업이 대상이 될 것 같다. 프랑스도 그렇고 스코틀랜드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우리 업종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어떻게든 버티자'는 거다. 망하는 곳이 늘어나면 그만큼 경쟁자가 줄어드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결국 누가 오래 버티느냐가 관건이다. 현재로서는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 전망도 밝지 않다.
pdhis9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