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으로 한국전에도 참전해 북한까지 진격
28살 때 사귄 필립에 대한 추억에 커밍아웃 용기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 미국에서 동성애자인 사실을 숨긴 채 90년을 살아온 할아버지가 커밍아웃한 뒤 친지는 물론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격려와 지지를 받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13일 미국 ABC방송에 따르면 미국 덴버 외곽에 사는 케네스 펠츠(90)는 최근 페이스북에 동성애자의 상징인 무지개 후드티를 입은 사진을 내걸고, "나는 자유롭다. 나는 게이다. 나는 커밍아웃 했다"고 밝혔다.
그가 거의 한 세기 동안 이성애자로 행세하다가 인제야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커밍아웃에 나선 것은 20대 시절인 1958년 만났던 첫사랑 필립을 잊지 못한 때문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 밖에도 제대로 못나가면서 자서전 집필에 전념하던 그는 이혼한 전 부인과 사이에서 낳은 외동딸 레베카 메이스에게 필립과의 사랑 이야기를 털어놓은 게 커밍아웃으로 이어진 것이다.
펠츠는 "오랜 시간 자서전을 쓰면서 절대 필립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아쉬움을 갖게된다"면서 "딸은 이런 사실을 갑자기 듣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름다운 산책로를 걸으며 필립을 떠올리는 등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첫사랑을 추억했으며, 최근 누군가 필립을 찾도록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나타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필립은 2년 전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딸인 레베카도 동성애자다. 그녀는 이미 20년 전 아빠에게 여성 동성애자인 레즈비언임을 털어놓았지만 펠츠는 당시 딸의 얘기를 들으면서도 커밍아웃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펠츠는 "긴 시간 내 영혼 깊숙한 곳에 진실은 묻혀있었다.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채택했다"면서 "게이임을 밝혔다면 사회적 멸시와 씨름해야 했을 테고, 변태나 성도착자로 낙인찍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사람들은 요즘 동성애자에 대해 훨씬 더 흔쾌히 인정해주는 모습이어서 용기를 내야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남성성을 강요받았던 그는 페이스북을 보면 1952년 미군 전함의 해군으로 한국전쟁에도 참여해 북한까지 진공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한국전 참전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듯 70년이 다 지난 지금에도 페이스북 첫 장에 해당 사진을 걸어놓고 있다.
같은 동성애자인 딸은 이런 아빠의 가장 든든한 지원자다.
레베카는 "아버지가 결국 성 정체성을 찾게 돼 행복하다"면서 "하지만 아빠가 사랑하는 필립을 잃고 힘들게 지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페이스북과 이메일을 통해 커밍아웃한 펠츠에게는 격려의 메시지가 쇄도한다.
펠츠는 눈물을 흘리며 "완전히 압도적이었다"면서 "전국,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이 오다니 너무 멋지다. 모든 사람에게 답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인 그는 커밍아웃한 게 자랑스럽고, 성 소수자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며, 커밍아웃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펠츠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지난 11일 미국의 성 소수자들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커밍아웃의 날을 맞아 ABC방송이 특별히 취재한 것으로 보인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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