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등에선 연식 5년 이내 중고차 판매 중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현대차[005380]가 20조원대 규모의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논란이 확산하는 가운데 향후 현대차가 어떤 식으로 중고차 매매업에 뛰어들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직 현대차가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해외 시장에서 운영하는 인증 중고차 프로그램을 토대로 연식 5년 이내의 차량을 중심으로 중고차를 판매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000270]는 현재 미국, 캐나다, 유럽, 러시아, 인도 등 주요 해외 시장에서 신차와 함께 중고차를 판매하고 있다.
미국 시장의 경우 연식 5년·운행 거리 6만마일 이내 차량을 대상으로 인증 중고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인증 중고차 판매시 카팩스 리포트(차량 이력 정보)와 긴급출동서비스 등도 제공한다.
현대차는 2018년과 작년을 기준으로 미국 시장에서만 연간 8만대가량의 중고차를 판매했다. 이는 미국 시장 신차 판매량의 11∼12% 수준에 달한다.
기아차까지 포함하면 미국 시장에서만 2018년 15만대, 작년 16만대의 중고차를 팔았다.
유럽 시장에서는 개별 국가에 따라 다르게 운영되던 것을 작년 9월 '현대 프라미스'라는 브랜드를 출범해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유럽에서의 인증 중고차 판매는 연식 5년·운행 거리 12만㎞ 이내 차량이 대상이며, 보증기간 2년 연장, 긴급출동서비스 등도 제공한다.
이를 토대로 짐작해 보면 현대·기아차가 국내에서도 연식 5년 안팎의 차량을 중심으로 중고차 매매업에 나설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다만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 자체에 반대하는 중고차 업계에서 5년 미만의 소위 '인기 매물'을 완성차 업계가 독점할 것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어서 실제로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소속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8일 국정감사에서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에 진입하면 상생 차원에서 캡을 씌우겠다고 하지만 연식이 오래 되고 주행거리가 긴 차량은 시장에서 팔고 현대차는 연식이 4∼5년된, 잘 팔리는 차를 팔겠다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 의원에 따르면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에서 작년 중고차 판매를 집계한 결과 1∼5년식 차량이 전체 중고차 판매의 52.8%를 차지했다. 6년식까지 확대하면 전체 판매의 60.3%로 늘어난다.
이에 대해 김동욱 현대차 전무는 국감에서 "신차의 70%를 파는 현대·기아차가 중고차까지 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며 "사업 범위에 대해서는 중소벤처기업부,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다른 사용자 단체 등과 충분히 협의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가 국감에서 언급한 '오픈 플랫폼'에 대한 관심도 높다.
앞서 김 전무는 "(중고차 시장의) 근본적인 문제는 품질 평가, 가격 산정을 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며 "현대·기아차가 가진 차에 대한 노하우와 정보를 최대한 공유해서 할 수 있는 '오픈 플랫폼'이라는 게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오픈 플랫폼은 직접 차량을 매매하는 공간이기보다는 인증 중고차에 대한 정보 등을 공유하는 장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 진출 의사를 공식화하며 일각에서는 현대글로비스[086280]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를 통한 사업 진출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이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업계 안팎의 얘기다.
현대글로비스는 소비자나 법인 리스카, 렌트카 등의 중고차를 대량 매집해 중고차 경매장에 출품, 이를 중고차 딜러들의 응찰을 통해 판매하는 도매 방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현재 경기 분당과 시화, 경남 양산 등 3곳에 중고차 경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서도 응찰이 가능하다. 일주일에 1천600∼1천800대가 출품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매집한 중고차량을 있는 그대로 평가해 출품하고 낙찰 수수료로 수익을 내는 구조"라며 "상품화 과정은 딜러에게 맡기고 희망가나 낙찰가에도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현대차가 해외에서 운영하는 인증 중고차 형태와는 거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 공식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지만 정작 현대차그룹 내부적으로는 국감 이후 중고차 판매업 진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는 상태다.
일단 주무부처인 중기부에서는 양측과 협의를 더 진행해 상생 방안을 가급적 도출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규모만 20조원에 달하는 중고차 매매업은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 신규 진출과 확장 등이 제한돼 왔다. 작년 초 지정 기한이 만료되자 기존 업체들이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했지만, 작년 11월 동반성장위원회가 부적합 의견을 냈고 현재는 중기부의 결정만 남아 있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국감에서 "(현대차가) 기존 중고차 판매업계와의 상생을 조건으로 진출해 이익 없이 '이븐 포인트(even point)'로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고 경쟁력을 키우는 계기를 만들면서 중고차 판매업하는 이들도 상생하는 길을 찾는다면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고차 업계는 대기업이 진출하면 중고차 매집이 어렵다는 종전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강희 전국중고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부장은 "결국 '쓰레기는 너네가 갖고 좋은 것은 우리가 가질테니 협의하자'는 것이어서 현대차와 (사업 범위를) 협의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법적 구속력도 없는 상생 협약만으로는 결코 상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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