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왕자의 난'으로 홀로서기 이후 20년만…'품질·현장경영' 강조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 헌액…대장게실염 등으로 3개월째 입원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현대·기아차를 글로벌 완성차 5위의 위치로 키워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아들에게 그룹 수장 자리를 넘기고 물러난다.
1999년 현대차 이사회 의장에 오른 지 21년 만이자, 2000년 '왕자의 난' 이후 현대차그룹으로 홀로서기에 나선 지 20년 만에 'MK 시대'가 저무는 셈이다. 정몽구 회장은 14일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이번 총수 교체는 정 명예회장의 뜻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선 회장이 그룹 수석부회장으로 사실상 그룹 경영을 진두지휘한 2년을 포함, 그동안 아들의 경영 능력이 충분히 검증됐다고 보고 운전대를 넘기기로 결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1938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정 명예회장은 경복고와 한양대 공업경영과를 졸업했으며, 1970년 2월 현대차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1974년에 현대자동차써비스를 설립하면서 독자경영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1977년에 현대정공(현재 현대모비스)을 세워 세계 컨테이너 시장을 석권했다.
형인 몽필씨가 1982년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장자 역할을 해 왔다.
1998년 현대차 회장에 이어 1999년 3월 이사회 의장에까지 오르며 작은 아버지인 '포니 정' 정세영 전 현대차 명예회장 대신 현대차 경영권을 장악했다.
이듬해인 2000년에는 동생인 고(故)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과 '적통' 자리를 두고 '왕자의 난'을 벌인 끝에 현대차 계열 회사만 들고나와 '홀로서기'를 했다. 현대그룹에서 분리될 당시 자산은 31조723억원으로, 삼성과 현대, LG, SK에 이어 자산 기준으로 재계 5위였지만, 현재는 삼성그룹에 이은 2위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20여년간 회사를 이끌며 '품질 경영'과 '현장 경영'이라는 키워드를 남겼다.
"품질은 우리의 자존심이자 기업의 존재 이유"라던 정 명예회장은 자동차 시장 환경이 급변할 때마다 해외 현지 공장을 직접 방문해 생산과 판매, 서비스 등 전 분야에서 고객 지향의 품질 주의를 확고히 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품질 개선을 위해 생산, 판매 현장을 직접 누볐다. 70대 나이에도 미국, 유럽, 인도, 중국으로 날아다녔다. 2016년에는 석 달 간 지구 한 바퀴에 해당하는 장거리 해외 출장을 소화했다.
외환위기 후 인수한 기아차도 성공적으로 회생시켰고, 미국, 유럽, 중국 등에 현지 생산-판매 체계를 갖춰 해외 시장을 공격적으로 공략했다.
제네시스 브랜드를 만들어 고급차 영역에 도전했고 현대제철부터 현대모비스[012330], 현대차, 현대글로비스[086280] 등까지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이뤄냈다.
또 그룹 연구개발(R&D) 총본산인 남양연구소를 설립해 핵심기술 확보에도 뛰어들었다.
창립 43년만인 2010년에는 마침내 포드를 제치고 세계 완성차 5위(판매량 361만대)에 올라섰다. 현대차그룹은 작년에도 판매량 기준으로 세계 5위를 유지했다.
그동안의 성과를 인정받아 정 회장은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Automotive Hall of Fame)에 한국인으로 처음 헌액됐다.
다만 옛 한전부지 매입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정 명예회장은 2014년 당시 감정가의 3배가 넘는 10조5천500억원에 삼성동 옛 한전부지를 사들였다. 현대차그룹은 부지 매입 6년 만인 지난 5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착공에 들어갔다.
1978년 한국도시개발공사(현 현대산업개발) 사장 시절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과 관련해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2006년에는 비자금을 조성해 수백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된 것은 오점으로 남았다.
정 명예회장은 2016년 12월 최서원(개명전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에 출석한 이후로는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 7월 대장게실염 등으로 입원한 뒤 3개월째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현재 병세는 다소 회복된 것으로 알려졌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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