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고법, 조선학교 법인 등의 손배소 청구 기각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일본 정부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계열인 조선학교를 고교 수업료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한 정책이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결이 또 나왔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히로시마(廣島) 고등재판소(고등법원)는 16일 히로시마 조선학교 운영법인과 졸업생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무상화 대상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한 처분의 취소와 약 6천만엔의 손해배상을 요구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원고 측 청구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조선학교가 북한과 조선총련의 영향을 받고 있어 무상화 자금이 수업료로 충당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는 피고(일본 정부) 측 주장을 받아들인 원심판결을 그대로 인정했다.
미키 마사유키(三木昌之) 재판장은 조선총련이 조선학교 교육 내용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공안조사청 자료와 보도를 근거로 학교 운영이 적정한지를 둘러싼 의혹이 있다며 문부과학상(장관)이 무상화 대상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한 처분을 재량의 일탈로 볼 수 없다고 판결이유를 밝혔다.
이로써 일본 전역에서 제기된 같은 취지의 소송에서 일본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쪽으로 속속 결론이 난 셈이 됐다.
이날 판결 후 히로시마 조선학교에서 원고와 지원자 250여명이 모여 법정 싸움을 계속하기로 결의했다.
한 고등부 3학년 여학생(18)은 전체 학생을 대표해 "민족에 관해 배우는 것이 죄인가"라며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앞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원고 측은 상고할 방침이다.
일본의 고교 무상화 정책은 공립고에선 수업료를 받지 않고, 사립고 학생들에게는 연간 12만~24만엔의 취학지원금을 주는 옛 민주당 정권의 핵심 정책으로 2010년 4월 시작됐다.
외국인학교 학생들도 지급 대상이지만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총리가 지시해 조선학교는 적용이 보류됐다.
이어 제2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출범 후인 2013년 2월 지원 대상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하는 법령(문부과학성령)이 확정됐다.
이에 반발해 조선학교 학생 등은 도쿄, 나고야, 히로시마, 오사카, 후쿠오카 등 일본 전역 5곳에서 무상화 배제 정책에 맞서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간 나왔던 1, 2심 판결 가운데 오사카지법 외에 일본 정부가 모두 승소했고, 오사카에서도 2018년 9월 2심에서 원고가 패소했다.
특히 일본 최고재판소가 지난해 8월 도쿄 조선중고급학교 출신 학생 61명이 제기한 같은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해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한 것이 위법하지 않다는 판결이 처음으로 확정됐다.
이후 오사카와 나고야 소송도 원고 패소로 종결됐다.
이 때문에 이번 히로시마 고등재판소 판결 내용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것이고, 원고 측이 상고하더라도 결과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원고 측은 일본 정부가 무상화 대상에서 조선학교를 뺀 것은 정치적 이유에 근거한 처분이자 재일 조선인 사회에 대한 차별이라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피고인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가 조선총련과 밀접한 관계인 점을 들어 지원금이 수업료로 쓰이지 않을 우려가 있다며 지급 대상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지난해 10월 인상한 소비세(부가가치세) 재원을 사용해 유치원과 보육원 무상화 제도를 도입하면서도 조선학교 관련 시설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재일 조선인 학부모들은 이를 차별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적용 배제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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