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시위로 물러난지 1년만에 권토중래…베이루트 시민 다수 '변화에 회의적'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지중해 연안 소국 레바논에서 세 번이나 총리를 역임한 사드 하리리가 22일(현지시간) 또 총리직에 지명됐다고 AFP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50세인 하리리 신임 총리 지명자는 레바논 정계의 전면적 쇄신을 요구한 대규모 시위로 물러난 지 거의 1년만에 다시 어려운 중책을 맡게 됐다.
레바논은 과거 식민 종주국 프랑스를 비롯해 국제사회로부터 수십 년 만에 최악의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개혁을 이행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압력을 크게 받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속에 지난 8월 4일 수도 베이루트 항구 대폭발 참사로 200명 가까이 숨지고 6천명 이상 다친 것도 경제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날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대폭발 사고 조사가 이뤄졌지만 두 달이 넘도록 어떤 신뢰할 만한 결과도 내놓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이 그를 총리로 지명한 직후 하리리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내각을 구성하겠다고 다짐했다. 레바논의 복잡한 종파 및 정파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독립적 성향의 내각 구성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요구한 개혁 조건이다.
하리리 신임 총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내각을 조속히 구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면서 이는 레바논의 "마지막 남은 기회"라고 호소했다.
대통령과 의회의 협의 과정에서 그의 총리 재지명은 의원 과반수인 65명의 지지를 받았으나 53명은 기권했다.
주요 정당 가운데 기독교계 정당 두 곳은 수니파 지도자인 그의 총리 재지명을 지지하지 않아 내각 구성이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단, 의회에서 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이슬람 시아파 정파 헤즈볼라는 그를 암묵적으로 지지했다.
구관이 명관일 수도 있지만, 하리리 신임 총리는 구시대 인물로 자칫 '그 나물에 그 밥'일 수도 있다.
그가 구원투수로 다시 등판한 데 대해 많은 베이루트 시민들은 과연 변화가 일어날지 회의적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앞서 베이루트 대폭발 참사 후 정부의 무능에 항의하는 거센 시위로 당시 하산 디아브 총리 내각이 총사퇴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교관 출신인 무스타파 아디브가 총리에 지명됐다.
그러나 아디브 총리 지명자는 일부 정당의 반발에 직면하자 한달이 채 안돼 사임해 레바논은 대참사후 지도자 없이 치솟는 빈곤에 직면해야 했다.
레바논은 명목상 대통령제(임기 6년의 단임제)이지만 사실상 총리가 실권을 쥐는 내각제에 가깝다.
이슬람 수니파 및 시아파, 기독교 마론파, 그리스정교 등 18개 종파가 얽혀있으며 독특한 권력 안배 원칙에 따라 대통령은 기독교 마론파,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 출신이 각각 맡는다.
이런 권력 안배는 일종의 '권력 나눠먹기'로 부패와 비효율성을 초래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sungj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