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밀입국 통로로 쓰여…올해만 최소 7명 사망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궂은 날씨 속에 제대로 된 안전 장비도 갖추지 못한 작은 배에 몸을 싣고 영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다 일가족이 모두 목숨을 잃는 참극이 벌어졌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 영불해협에서 27일(현지시간) 이란 국적의 이민자들을 태운 소형 보트가 프랑스에서 8㎞ 떨어진 곳에서 뒤집혀 4명이 사망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프랑스 최북단 노르주(데파르트망)는 이날 오후 9시 30분께 발생한 사고로 남성 1명이 익사했고, 여성 1명과 5세, 8세 어린이 2명이 심장 마비로 숨졌다고 밝혔다.
영국 BBC 방송은 사망자들이 35세 동갑내기 부부와 이들의 딸(9)과 아들(6)로 파악됐으며 15개월 난 막내아들은 실종됐다고 보도했다.
희망을 좇아 영국으로 향하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이 가족들은 이라크와 국경을 접한 이란 사르다슈트에서 온 쿠드르계 이란인들이었다.
폭풍우를 만나 전복된 보트에는 20여명이 타고 있었는데 구조 당국이 바다에서 건져내 병원으로 옮긴 사람은 15명뿐이었고 나머지는 실종됐다. 프랑스 당국은 실익이 없다고 보고 28일 오후 수색을 종료했다.
영국 동남부와 프랑스 동북부 지역을 잇는 영불해협은 아프리카, 중동 출신 이민자들의 밀입국 통로로 빈번하게 쓰여왔다.
과거에는 페리, 화물트럭 등에 숨어 영국으로 들어갔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그 기회마저 줄어들자 목숨을 걸고 바다를 횡단하는 이민자들이 늘고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야 운까지 따른다면 영국 땅을 밟을 수 있겠지만, 바다가 언제 돌변할지 예측할 수 없다 보니 올해만 최소 7명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지난 5월에는 프랑스 채널항에서 남성 시신 1구가, 8월에는 칼레 외곽 해변에서 남성 시신 2구가 발견됐다. 물론 아직 찾지 못한 희생자가 더 있을 수 있다.
영국 정부는 불법 이민을 차단하고,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프랑스 정부에 적극적인 단속을 요청하고 있다.
프랑스 당국은 지난 9월 영불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가려던 1천300여명을 사전에 차단했다고 밝혔는데 여기에는 30㎞에 달하는 바닷길을 헤엄쳐서 가려던 이들도 있었다.
이민자 지원조직 '살람'은 "프랑스에서의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이민자들은 목숨을 걸고 해협을 건너 영국에 오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은 영불해협이 "어린이들의 묘지가 돼서는 안 된다"며 영국과 프랑스 정부에 "절망에 빠진 가족들에 안전하고 합법적인 길"을 열어달라고 촉구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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