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시민·노동단체, 징용배상 판결 2주년 맞아 '양심의 목소리'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이런 회사가 세계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로 부끄러워요."
한국 대법원이 일본 강점기의 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배상하라는 첫 판결을 확정한 지 2년을 맞은 30일 도쿄 도심에서 일본인들이 내는 양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메시지는 간결했다.
일본 정부와 강제동원에 관계된 전범 기업들이 과거의 잘못한 일에 대해 사죄하고, 한국 대법원판결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것이다.
이날 미쓰비시(三菱)중공업과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 본사가 있는 도쿄 마루노우치(丸ノ內)에서 한국 대법원판결 2주년을 맞아 '나고야 미쓰비시·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지원 모임'(이하 소송지원모임) 등 일본 시민단체와 노동단체 회원들의 릴레이 시위가 펼쳐졌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과 11월 29일 각각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을 피고로 제기된 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잇따라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일본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두 대기업은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개인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 눈치를 보면서 지금까지 판결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고 측은 대법원판결로 얻은 손해배상 채권을 행사하기 위해 두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현금화하는 법적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일본 정부는 압류 자산의 현금화로 일본 기업이 실질적 피해를 보게 될 경우 양국 관계에 매우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소송지원모임 공동대표인 데라오 데루미(寺尾光身) 씨는 이날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 집회에서 "부끄럽다"(恥ずかしい)라고 거듭 말했다.
그는 "요즘은 기업들이 컴플라이언스(기업행동규범)를 중시하고 있고, 미쓰비시중공업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며 "그렇다면 한국에서 법대로 나온 판결을 제대로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무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지난 2년간 한국 대법원판결을 외면한 채 '컴플라이언스'를 무시해온 미쓰비시중공업은 "반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미쓰비시중공업 측은 소송지원모임이 2007년 이후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해온 '도쿄금요행동' 508번째 행사를 겸해 이날 연 집회에 대해서도 묵묵부답의 자세를 이어갔다.
소송지원모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올 3월 이후 금요행동 시위를 멈췄다가 6월 26일 미쓰비시중공업 정기주총에 맞춰 507번째 시위를 재개했으나 코로나19 때문에 또다시 중단했었다.
소송지원모임은 이날 미쓰비시중공업 앞 집회를 마친 뒤 인근의 일본제철 본사 앞으로 이동해 한국 대법원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시위를 이어갔다.
일본제철 본사 앞 집회에는 노동단체인 도쿄전노협(全勞協) 회원들이 합류해 참가자가 20여 명에서 60여 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일본제철 옛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명의로 하시모토 에이지(橋本英二) 일본제철 사장에게 한국 대법원판결을 이행하라는 '요청서'를 전달했다.
요청서에는 "2년 전에 징용피해자 4명의 손해배상을 귀사(貴社)에 명령한 한국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지만 살아서 이 판결을 접한 원고는 이춘식 씨뿐이었다"며 인도적인 차원에서라도 올해 96세인 이 씨가 생존해 있을 때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는 내용도 담겼다.
다카하시 마코토(高橋信) 소송지원모임 공동대표는 "(한국) 대법원판결을 일본 정부와 피고 기업들이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미쓰비시중공업 관련한 배상 판결 2주년을 앞둔 내달 27일 같은 장소에서 509번째 '금요행동'을 재개하겠다고 예고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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