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화해 무드→트럼프 돈줄 죄기…미 對쿠바 정책 급변
트럼프 제재 따른 관광·송금 위축, 쿠바인 삶의 질에 직결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눈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사지만, 그 어느 나라보다 초조하게 미 대선을 지켜보는 곳이 있다면 바로 카리브해 섬나라 쿠바다.
로이터통신은 1일(현지시간) "쿠바는 중남미 대부분 국가보다 미국 대선에 더 많은 것이 걸려있다"고 표현했다.
쿠바인들이 미 대선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미국 정권 교체에 따른 대(對)쿠바 정책의 극적인 변화를 목격했고, 이러한 정책 변화가 국민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최근 몇 년 새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쿠바는 쿠바 공산혁명 이후인 1961년부터 오랜 단교 상태였다.
그러다 버락 오바마 정권 시절인 2015년 54년 만에 양국 국교가 정상화됐고 미국의 오랜 금수 조치도 조금씩 완화됐다.
이러한 화해 무드는 오래가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들어선 후 미국은 오바마 정권에서의 대쿠바 외교 성과를 대부분 되돌리고, 경제 제재를 더 강화했다.
트럼프 정부는 쿠바 정권이 국민 인권을 탄압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권을 돕는다는 이유로 정권의 돈줄을 옥죄고 나섰다.
쿠바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인 관광, 의료 서비스 수출, 해외 송금은 트럼프 정권 들어 모두 큰 타격을 받았다.
미국은 쿠바로의 단체여행과 전세기 운항을 금지하는 등 미국 관광객들의 쿠바행을 제한하고, 우방국들에 쿠바 의료진을 받지 말라고 촉구했다.
최근엔 미국 금융사 웨스턴유니언의 쿠바 협력사인 쿠바 군 소유 금융사 핀시멕스를 제재 대상에 올렸다.
미국 기업이 제재 대상과 거래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웨스턴유니언이 다른 민간 파트너를 찾지 않는 이상 쿠바 내 활동이 어려워진다.
핀시멕스는 지난달 말 성명을 내고 "미국의 악랄한 조치 탓에 전국 407개 웨스턴유니언 지점이 문을 닫아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이민 간 쿠바인들이 가족과 친척에게 달러를 보내는 길이 막힐 수도 있는 것이다.
쿠바 국민에게 직접적인 타격이 될 수 있는 이번 제재는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경합주 플로리다의 150만 명 쿠바계를 공략하기 위한 것이었다. 쿠바를 떠난 이민자들은 쿠바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강경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쿠바에 머물며 미 제재 여파를 온몸으로 느끼는 국민들은 사정이 다르다.
미국 마이애미에 사는 아들이 보내주는 월 60∼100달러의 돈으로 생활하는 쿠바인 에스페란사 차콘(89)은 로이터에 "트럼프 대통령이 내가 먹고살 길을 막고 있다. 매일 그가 선거에서 지도록 기도한다"고 말했다.
수도 아바나에서 주로 관광객을 상대로 한 식당을 운영하는 오를란도 로드리게스는 AP통신에 "트럼프 시대는 쿠바 관광업에는 바이러스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반대로 오바마 정권에서 부통령을 지낸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양국 화해 분위기가 다시 조성되고 미국 관광객이 몰려들 것이라는 기대감이 쿠바에선 나온다. 다만 오바마의 대쿠바 정책에도 한계와 비판이 있었던 만큼 기조가 어느 정도 유지될지는 불투명하다.
미 아메리칸대의 쿠바 전문가인 윌리엄 레오그란데 교수는 로이터에 "미 대선 결과는 쿠바에 엄청나게 중요하다"며 "쿠바를 굶주리게 해 굴복시키려는 트럼프 정책과 대화를 재개하는 바이든 정책" 사이에서 대선이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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