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커피 생산국, 길거리서 커피와 흡연 함께 즐기는 문화
[※ 편집자 주 : '잘란 잘란'(jalan-jalan)은 인도네시아어로 '산책하다, 어슬렁거린다'는 뜻으로, 자카르타 특파원이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연재코너 이름입니다.]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담배를 피우면서 봉지 커피를 하루 석 잔은 꼭 마시죠. 두 가지는 짝꿍이에요"
2일(현지시간) 자카르타 시내 잘란 스나얀의 와룽(구멍가게)에 차를 세우고 커피를 마시던 이망(57)씨는 씩 웃으며 담뱃갑을 들어 보였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구멍가게나 노점에서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며 담배 피우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17세기말 네덜란드 식민시절부터 커피를 재배한 인도네시아는 브라질, 베트남, 콜롬비아에 이어 세계 4대 커피 생산국으로 꼽힌다.
인도네시아인들은 곱게 갈은 원두가루와 설탕을 넣고 끓인 뒤 가루가 가라앉으면 마시는 터키식 커피처럼, 뜨거운 물에 원두가루와 설탕을 넣어 마시는 '코피 히땀 양 마니스를 좋아하지만, 흔히 인스턴트 커피를 많이 마신다.
커피와 설탕만 들어있는 인스턴트 커피도 있고, 커피·설탕·크림이 모두 들어있는 이른바 '3박자 커피'도 인기다.
와룽에는 루왁 화이트 커피, 굿데이, 인도카페, 네스카페 같은 다양한 브랜드의 일회용 커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와룽 주인은 손님이 일회용 커피를 고르자 곧바로 봉지를 뜯어 잔에 붓고, 펄펄 끓는 물을 부어 바로 내왔다.
커피 한 잔의 값은 6천 루피아(500원). 도심을 벗어나면 커피 한 잔 값은 2천∼3천 루피아(160∼240원)로 내려간다.
택시기사, 오토바이 기사 할 것 없이 많은 인도네시아인이 길거리 커피 한 잔에 빵으로 간단한 끼니를 때우거나 담배를 피우면서 담소 나누는 것을 일상생활로 즐긴다.
자카르타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이소왕 변호사는 "인도네시아인들이 기호품으로 커피와 담배를 즐기는데, 커피는 싼값에 피로를 풀어주는 의미가 있다"며 "한국에서는 요새 아메리카노를 주로 마시지만, 인도네시아인들은 달콤한 커피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물론 인도네시아에는 대학생, 회사원을 중심으로 원두커피를 즐기는 인구도 많다.
스타벅스, 맥스커피, 아노말리커피처럼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가면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펴고 작업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커피 생산량이 많은 만큼 재래시장에 가면 원두를 자루째 쌓아놓고 파는 가게를 볼 수 있다.
자카르타 재래시장인 빠사르 싼타(Pasar Santa)의 D원두가게는 현지인들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유명하다.
매니저 순띠(45)씨는 "2000년부터 이 자리에서 영업중이고, 80종 이상 원두를 판매한다"며 "저렴하게 팔지만, 손님이 많아서 월 5천만 루피아(400만원) 정도 매출을 올린다"고 말했다.
인기 있는 커피품종을 물어보자, 수마트라섬의 가요커피와 만델링, 술라웨시섬의 또라자 커피, 발리섬의 낀따마니 커피 등을 추천했다.
'가장 비싼 커피는 무엇이냐'고 묻자 루왁커피를 보여줬다.
루왁커피는 사향고양이가 잘익은 커피 열매를 먹고 난 뒤 소화기관을 거쳐 배설한 생두를 세척후 건조, 볶아서 만든 커피다.
이 가게는 루왁커피 원두 1㎏을 50만 루피아(4만원)에 팔았다.
나머지는 ㎏당 7만 루피아(5천500원)에서 45만 루피아(3만5천원)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아체주 롱베리와 피베리, 발리 아라비카, 만델링, 루왁커피를 각각 100g씩 주문했더니 모두 더해 11만6천 루피아(9천원)이었다.
원두가게 직원은 능숙한 한국어로 "커피콩, 가루 중 뭐로 드릴까요?"라고 묻고는 각각 밀봉한 봉투에 커피콩을 담아줬다.
인도네시아의 커피 문화와 맛있는 커피 만드는 법을 묻고자 자카르타에 사는 한국인 커피 마스터 이진호(44)씨와 만났다.
2000년대 후반 홍대에 '미즈모렌'이란 카페를 운영했던 이씨는 한국에 더치커피 붐을 처음 일으키고, 커피와 우유가 담긴 작은 주전자 두 개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상태로 테이블 위 잔에 내용물을 떨어뜨려 카페오레를 만드는 기술로 '생활의 달인'에 출연했었다.
2013년 자카르타로 이주한 이씨는 "인도네시아의 대다수 서민은 인스턴트 봉지 커피와 전통방식의 끓인 커피를 즐긴다"며 "한국도 처음에는 인스턴트 커피만 마시다 점점 경제가 발전하면서 에스프레소 커피, 드립커피, 더치커피 등을 다양하게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인도네시아 여러 섬의 커피농장을 가봤는데, 지역마다 맛과 향이 모두 다르다"며 "플로레스섬의 커피는 단맛과 초콜릿 같은 향이 나고, 자바섬 커피는 쓴맛이 적고 신맛이 강하면서 재배가 쉽다"고 특징을 줄줄 읊었다.
그는 "커피는 99%가 물이다. 물맛이 좋아야 한다"며 집에서 드립커피를 만든다면 증류수를 사용하고, 차가운 컵에 커피가 닿으면 산미가 강해지니 잔을 따뜻하게 데워서 쓰라고 권유했다.
특히 커피 물을 90도 이하로 맞춰야 제맛이 나기에 펄펄 끓는 물은 식혀서 사용하라며 '물과 온도'를 강조했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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